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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차로 40분인데, 죽기 전에 밥먹자” “또 보게 오래 사시라요”

등록 2018-08-22 21:04수정 2018-08-23 07:36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날 ‘눈물바다’

92살 오빠는 70살 여동생에게
“죽기 전에 우리집에서 밥도 먹고…”
사흘 내내 말수 적던 딸의 통곡
“어머니! 어머니! 건강하시라요!”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1회차 행사 마지막날인 22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북쪽 가족이 남쪽으로 떠나는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며 울먹이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1회차 행사 마지막날인 22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북쪽 가족이 남쪽으로 떠나는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며 울먹이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내가 타고 가는 버스는 8번, 8번, 8번 버스야.” 오빠 신재천(92)씨는 “엄마하고 똑 닮은” 북녘의 여동생 금순(70)씨한테 자신이 탈 버스 번호를 일러주고 또 일러줬다. 일가족 중 혼자 남쪽으로 피난을 나와 평생 외로웠던 신씨는 동생 금순이를 향한 그리움이 사무쳐 밤마다 혼자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렀다. 이렇게 동생을 만나 “기쁘고 한이 풀리고” 그랬는데, 다시 이별이다.

“서로 왕래하고 그러면 우리 집에 데리고 가서 살도 찌우고 싶은데…. 죽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그래. 내가 차 가지고 가면 (김포에서 개성까지) 40분이면 가. 왕래가 되면 배불리고 갈 텐데….”

20~22일 2박3일간 금강산에서 열린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1차 행사의 막이 내렸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22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했다.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어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이날 오후 1시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 “상봉이 모두 끝났습니다.” 오지 않았으면 했던 시간이 기어코 왔다. 작별상봉 3시간이 모두 끝났음을 알리는 안내방송과 함께 남북이 모두 아는 노래, ‘다시 만납시다’가 흘러나왔다. 남과 북에 떨어져 사는 5만6천여 이산가족이 만날 날은 올까, 이번 1차 행사에서 만난 남북 89가족이 다시 만날 그날이 오긴 오는 걸까.

■ 말수 적던 큰딸이 통곡을 했다

“어머니! 어머니!” 사흘 내내 말수가 적고 얌전하던 큰딸이 남쪽에 떨어진 엄마 한신자(99)씨가 탄 버스를 손바닥으로 세차게 두드렸다. 버스 창문이 딸의 키보다 높아 엄마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절규하고 통곡을 했다. “어머니! 건강하시라요!” 한씨와 큰딸 김경실(72), 경영(71)씨 세 모녀는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했다.

남쪽 최동규(84)씨의 북쪽 조카 박춘화(58)씨는 버스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렇게 헤어져야 하나! 이렇게 기막힌 게 어딨니. 통일되면 이런 거 안 하잖아. 이게 뭐야, 이게!” 남쪽 고호준(77)씨는 버스 밖에서 우는 북녘의 형수와 조카를 바라보다 못해 버스에서 내리고 말았다. “어이구, 자슥아. 어떻게 떠나니. 떼어놓고 가려니 발이 안 떨어진다.” 조카를 끌어안고 목을 놓았다. “삼촌, 울면 안 됩니다. 통일되면 건강해서 다시 만납시다.” 울지 말라는 조카의 얼굴도 눈물범벅이다.

이관주(93)씨의 북쪽 조카 리광필(61)씨는 작은아버지가 탄 5호차 밖에서 아이처럼 울었다. 작은아버지한테 손바닥을 뻗어 보였다. 손에는 볼펜으로 쓴 ‘장수하세요’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작은아버지는 빨개진 눈을 감추려 선글라스를 썼다. 남쪽 89가족 197명을 태운 속초행 버스는 오후 1시30분께 그렇게 금강산을 떠났다.

22일 오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김병오(88) 할아버지와 북쪽에서 온 동생 김순옥(81) 할머니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22일 오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김병오(88) 할아버지와 북쪽에서 온 동생 김순옥(81) 할머니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 연락처 주고받고, ‘가계도’ 그려 주머니 속에 고이

이날 작별상봉 시간엔 거의 모든 가족이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언젠가 남과 북 할 것 없이 자유롭게 오갈 날이 오면 전화를 걸고 찾아가 만날 끈을 만들려는 것이다. 내가 죽으면 내 자식이라도…. 가계도를 그리고, 친척의 이름을 적는 가족이 숱하다. 남쪽에서 아버지 독고란(91)씨와 함께 온 아들 독고석(55)씨는 북쪽 사촌들과 함께 가계도를 그렸다. 혹시라도 나이 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들이 이날 그린 가계도를 보고 북녘의 가족을 찾을 것이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와 복받쳐서일까. 마지막 상봉 기회인데, 서로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가족이 적지 않았다. 남쪽 오빠 김병오(88)씨는 북쪽 여동생이 상봉장에 들어와 테이블에 앉자마자 눈동자를 허공으로 돌렸다. 옆에 앉은 여동생을 외면하곤 흐느꼈다. “오빠 울지마. 울면 안 돼.” 동생이 오빠 손을 잡으며 말했지만 오빠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내 여동생 눈시울도 벌게지고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남매는 10분이 넘도록 아무 말도 못했다. “하이고….” 탄식이 테이블을 휘감았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날인 22일 금강산호텔에서 남쪽 김춘식(87·오른쪽) 할아버지가 북쪽 동생 김춘실(77) 할머니와 얼굴을 맞댄 채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날인 22일 금강산호텔에서 남쪽 김춘식(87·오른쪽) 할아버지가 북쪽 동생 김춘실(77) 할머니와 얼굴을 맞댄 채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남쪽 큰오빠 김춘식(80)씨는 춘실(77)·춘녀(71) 자매 옆에 앉아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다. 전란 때도 동생들만 두고 남쪽에 갔는데, 이제 또 오빠는 혼자 남으로 가야 한다. 그런 오빠를 보는 자매도 손수건에 얼굴을 묻는다. 미안한 마음에 말문이 막힌 오빠가 힘겹게 입술을 뗐다. “오래 살아야 다시 만날 수 있어.”

금강산/공동취재단,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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