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6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2차 행사가 24일 오후 3시15분께 첫 단체상봉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에게 허용된 시간은 2박3일, 모두 12시간이다. 남북 81가족의 가슴아픈 사연 가운데 일부를 전한다.
남북의 이산가족이 분단 후 65년 만에 다시 만나 진한 혈육의 정을 나눈다. 8.15 계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 첫날인 24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 설악에서 조정기(67) 할아버지가 북녘의 아버지 조덕용(88) 할아버지를 상봉하기 위해 금강산으로 출발하고 있다. 조 할아버지는 이번 상봉 행사의 유일한 '부자상봉'에 해당되며, "자신이 50여 일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별하셨다"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북녘 어머니 만났다가 ‘간첩 누명’ 쓴 사내…26년 만에 동생들과 상봉
전쟁 고아가 된 사내에게는 소원이 있었다. 38선 너머에 있는 어머니와 누이, 동생을 만나는 일이었다. 고학하며 대학을 나와 이름 난 대기업에 취직했고, 나이 40줄에는 태국에 어엿한 공장을 차렸다. 마침 노태우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는 기치 아래 북한주민 접촉 신청을 받기 시작했고, 사내는 통일원(현 통일부)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를 통해 1992년 9월 평양에 갔다. 정말 소원을 이뤘다.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왔다. 그때 어머니 나이가 68살이었다.
4년10개월이 지난 어느날, 당국은 갑자기 사내를 체포했다. 잡입 탈출, 찬양 고무 등 ‘간첩 누명’을 씌웠다. 20일 동안 취조하고, 때리고 고문했다. 2년6개월 형을 때려 감옥에 처 넣었다. 옥살이를 한 지 1년여 지났을까, 김대중 정부 출범 첫해인 1998년 8·15 특별사면을 받아 세상으로 나왔다. 억울한 옥살이를 했지만,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만난 대가려니 했다.
송유진(75)씨 이야기다. 송씨가 24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26년 만에 북녘의 가족을 만났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이어지자 두어차례 상봉 신청을 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북녘 남동생 송유철(70)씨가 형을 찾았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큰아들을) 만나고 나니 살아야 할 의욕을 잃으신 건지, (1992년) 나 만나시고 1년 있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도 소원이던 어머니를 만나고 나니 삶의 의욕이 줄어들더라고요.” 송씨는 이번 상봉이 “다시 삶을 사는 계기”가 될 거라 믿는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에서 상봉대상자와 가족들이 우산을 쓴 채 버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유일한 ‘부자 상봉’…“68년 아버지 기다린 어머니 한 풀러 간다”
부인 뱃속에 아들이 들어선 지 100일이 됐을 무렵일까. 전쟁이 났고, 남편는 북으로 떠났다. 부인은 과부로 68년을 살다 두어달 전 생을 마감했다. 가닿을 방법도 없는데, 평생 남편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유복자’로 살아온 아들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살아계십니다.” 반갑고 기쁜 마음이 들다가 이내 속상함이 치밀어 올랐다. ‘엄마가 겨우 한 달 20일 전에 돌아가셨는데, 왜 이제서야….’ 대한적십자사가 보내온 아버지 사진은 거울에 비친 아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이번 2차 행사에 참여하는 남쪽 아들 조정기(67)씨 사연이다. 조씨는 24일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났다. 북쪽에 사는 아버지 조덕용(88)씨가 남쪽의 아들을 만나겠다고 신청해왔다. 행사가 시작하기 전 취재진과의 사전 인터뷰에서 조씨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2년도 아니고, 두 달도 안 돼서 연락을 받으니까 내 속이 어떻겠어요. 내가 아버지한테 어머니 한풀이 하러 가는 거예요”라고 서운함을 내비친 바 있다. 평생 홀로 아버지를 기다린 어머니, 결국 다시 아버지를 보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속상함에 때문에 마음과는 달리 입에서는 퉁명스런 말이 나온다. 조씨는 2박3일 12시간 동안 아버지와 시간을 보낸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에서 이번 상봉 최고령자인 강정옥(100.오른쪽)할머니와 김옥순(89)할머니가 남북출입사무소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세 자매 상봉…100살 된 큰언니, 금강산서 북녘 동생 만났다
“정화, 정화, 우리 딸 정화도 열일곱인데….” 엄마는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보며 그렇게 되뇌곤 했다. 학교 갔다 돌아온 딸들이 현관문을 열면 “아이고, 정화가 들어오는 줄 알았다”고 혼잣말 했다. 곁에 없는 딸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엄마가 여든 네 살 나이로 영원히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정화, 정화…’ 딸 이름을 불렀다.
정화씨는 한국전쟁이 나기 직전 영등포 방직공장에 취직하려 서울에 올라왔다가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정화씨 부모는 딸을 찾으러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허사였다. 북으로 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북쪽에 사는 강정화(85)씨가 이번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남쪽에 남아 있는 큰언니 강정옥(100)씨, 동생 강순여(82)씨를 찾았다. 68년 만에 다시 만나는 세 자매에게는 할 이야기가 많다.
# 죽은 줄 알았던 맏언니가 살아 있었다
맏딸은 스무살이 되기도 전 건넛마을로 시집을 갔다. 1950년 전쟁이 났고 맏딸을 뺀 온 가족이 피난길에 올랐다. 가족이 다시 고향집에 돌아왔지만 맏딸의 행방을 알길이 없었다. “똑똑하고 집도 아니까 살았으면 다시 돌아오겠지….” 가족들 기대와 달리 맏딸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명절이 돌아오면 행방을 모르는 딸 생각에 눈물바람하던 엄마는 맏딸을 그리워하다 아흔살도 안 돼서 세상을 떴다.
맏딸 강호례(89)씨는 북쪽에 살아 있었다. 이번에 남쪽 가족들을 찾겠다고 먼저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했다. 남쪽 가족들은 오히려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호례씨가 전쟁통에 죽은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언니가 살아 있단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남쪽의 여동생 두리(87)씨가 말했다.
큰언니 호례씨가 남쪽 가족을 찾았다는 소식이 온 가족에 전해진 뒤로 가족들은 단체 ‘카톡방’을 만들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강호례씨 어머니, 아버지)의 살아생전 사진을 모으기 위해서다. 두리씨와 금강산에 동행하는 딸 최영순(59)씨는 “(큰 이모에게) 북쪽에 가서 (사진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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