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집무실에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취소시킨 것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이 “위태롭고 무산될 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시엔엔>(CNN) 방송은 이 편지가 폼페이오 장관이 새로 임명된 대북특사 스티븐 비건과 함께 지난 24일 북한을 방문하려고 출발하기 몇 시간 전에 전달됐다고 북한과의 협상에 정통한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시엔엔>은 이 소식통들이 “미국이 평화협정 서명을 진전시키는 조처를 취하는 것과 관련해 (북한의) 기대를 충족시킬 준비가 아직 안 됐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은 그 과정이 진전될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타협이 이뤄지지 못하고 초기 단계의 대화가 붕괴된다면, 평양은 “핵 및 미사일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고 이 소식통들은 전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보낸 편지의 존재는 <워싱턴 포스트>가 27일 보도해 알려졌다. 이 신문의 외교 전문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발표 하루 만에 이를 갑작스레 취소한 것은 이 ‘비밀 편지’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 보도를 보면, 24일 오전 폼페이오 장관이 김 부위원장한테 받은 편지를 백악관에 가져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여줬다. 편지를 읽은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방북이 성공할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고 로긴은 밝혔다. 그는 편지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하지 않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할 만큼 충분히 적대적이었다”고 했다.
이 결정을 내린 회의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 성 김 주필리핀 대사 등 대북정책 핵심들이 참석했다. 이 회의 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나는 현시점에서 폼페이오 장관에게 북한에 가지 말라고 요청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며 “폼페이오 장관은 가까운 미래에, 아마 우리의 중국과의 무역관계가 해결된 뒤에 북한을 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 대해 더욱 강경해진 우리의 무역 입장 때문에 중국이 예전만큼 (북한의) 비핵화 과정을 돕지 않고 있다”고 중국을 겨냥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을 중국과의 무역 문제에 연계시킨 것이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중국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해, 미-중 무역전쟁과 연계시킨 북한 비핵화 협상 연기 사태도 장기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이날 멕시코와의 무역 협상이 타결된 직후 백악관에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 통화하다가 중국 얘기를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미-멕시코 무역 협상)과는 관계없지만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도 매우 많이 협상하고 있다. 중국이 그 하나다. 중국은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지금은 중국과 대화할 적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중국과의 무역은) 너무 오랫동안, 수십년 동안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그래서 얘기할 적기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어 “궁극적으로는 중국과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 현재 우리는 중국을 상대로 잘 싸우고 있다”며 “우리 경제는 상승세다. 이렇게 좋은 적이 없었고 더 좋아질 걸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탄탄한 모습을 보이는 만큼,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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