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수색국’(DPAA) 책임자인 켈리 매키그 국장이 23일(현지시각) 한국전쟁 때 북한 지역에서 실종된 미군 유해 발굴 문제와 관련한 북-미 협의의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공동성명에 명시한 한국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서 실종된 미군 유해 발굴 문제와 관련해, 발굴 시기와 방법, 조건 등 구체 사항을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수색국’(DPAA·디피에이에이) 책임자인 켈리 매키그 국장과 안익산 조선인민군 중장이 서신 교환 방식으로 직접 협의해온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매키그 국장은 “북한의 안익산 인민군 중장과 내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발굴의 시기 등 구체 사항을 협의해왔다”며 “내가 안 중장한테 가장 최근에 보낸 편지는 3주 전”이라고 밝혔다. 매키그 국장은 23일(현지시각), ‘한-미 안보포럼’ 한국 쪽 대표단이 하와이 인도태평양사령부 기지 안에 있는 디피에이에이를 방문한 계기에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매키그 국장은 “내가 최근에 보낸 편지에는 우리가 북쪽에 제안할 내용이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2주 안에 마무리되리라는 내용 등 관련한 진전 사항을 담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미국 정부가 다듬고 있는 ‘대북 제안’의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유해 발굴은 디피에이에이의 직접 책임”이라며, 시기를 특정하지 않은 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한테서 내가 안익산 중장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협의하는 문제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폼페이오 장관의 위임에 따라) 디피에이에이는 비핵화 진전 여부와 무관하게 북한 쪽과 연락해 협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 중장과 나는 뉴욕에 있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와 미국 대표부)를 통해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덧붙였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은 7월15일(현지시각) 성명을 내어, 같은 날 판문점에서 열린 유엔사령부와 조선인민군 장성급 회담에서 “(북-미) 양쪽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5300여명으로 추정되는 미국민의 유해를 찾기 위한 현장 발굴 작업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당시 폼페이오 장관은 유해 발굴의 시기와 방법 등 구체 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매키그 국장이 공개한 안익산 중장과의 서신 교환은 그 후속 협의로 풀이된다.
매키그 국장은 “우리는 내년에 세계 47개국에서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을 할 예정인데 거기에 당연히 북한도 포함돼 있다”며 “다만 북한 지역 발굴 문제는 아직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북한과 협의가 잘 진행돼 내년 3월부터는 장진호와 운산 지역에서 미국과 북한이 함께 발굴 작업을 재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전쟁 때 장진호 지역에서 1천여명, 운산 지역에서 1천여명의 미군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매키그 국장은 “최근 남과 북이 (비무장지대) 화살머리고지 한국전 실종 유해를 공동 발굴하기로 한 합의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유해 발굴 관련 미국과 북한의 협상도 남북 군 당국의 합의와 유사한 형태가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매키그 국장이 밝힌 협상 상대인 안익산 중장은 유엔사-북한 인민군 장성급회담과 남북 장성급군사회담의 북쪽 단장을 맡고 있는 인민군 내 대표적인 회담통이다. 매키그 국장은, 7월27일 원산 갈마비행장에서 진행된 미군 유해 송환식에도 “안익산 중장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미국 하와이 인도태평양사령부 기지 안에 있는 ‘전쟁포로 및 실종자 수색국’(DPAA) 청사. 이제훈 선임기자
이와 관련해 원산 유해 송환 현장에 있었던 디피에이에이 유해감식소 제니 진(한국 이름 진주현) 박사는 “원산에 가보니 북쪽에서 (미군 유해를 담은) 55개 상자마다 발굴 관련 정보를 상세하게 적은 기록지와 유품을 챙겨 놓는 등 준비를 잘해놔 아주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일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진 박사는 “시일이 워낙 오래돼 북쪽이 보내준 55상자에 완전한 유해는 하나도 없었지만 9월에 2명의 미군 신원을 확인했는데, 그 가운데 한 건은 북쪽 관계자들이 인식표(군번줄)를 챙겨주며 ‘이 상자 또는 그 주변 상자에 이 군번줄의 주인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준 게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북한이 동물뼈를 미군 유해라고 보내준 적이 있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북한은 지금껏 단 한번도 미국에 동물뼈를 보내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와이/글·사진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