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북 가능성에 관심이 높은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북·중 예술인들의 합동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중통)이 “관계 개선과 제재는 양립될 수 없는 상극”이라며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되살리는 문제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담은 글을 공개했다. 오는 7~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릴 것으로 알려진 북-미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미국을 향해 제재 관련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외곽 때리기’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북한 외무성 미국연구소의 권정근 소장은 “4월 우리 국가가 채택한 경제건설총집중 노선에 다른 한가지가 추가돼 ‘병진’이라는 말이 다시 태어날 수도 있으며 이러한 노선의 변화가 심중하게 재고려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 개인 논평을 발표했다고 <중통>이 지난 2일 오후 전했다. 물론 “미국이 우리의 거듭되는 요구를 제대로 가려듣지 못하고 그 어떤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은 채 오만하게 행동한다면”이라는 전제가 달렸다.
지난 4·20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경제·핵 병진 노선’ 완료가 결정되고 경제건설총집중 노선이 채택된 뒤 북한 고위 인사의 발언이나 주요 매체에 ‘병진 노선 재고려’ 운운하는 내용이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논리를 극단화하면, 병진 노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한테 공개적으로 거듭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 노력의 철회를 뜻해서다.
권 소장의 글도 이런 심각한 파장을 염두에 둔 듯, ‘병진 노선 재고려’ 주장의 근거를 “우리만 변했을 뿐 우리의 주변 환경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민심의 목소리”에서 찾았다. 김 위원장을 포함한 당·정·군의 생각이 아니라 ‘민심’이 그럴 정도로 미국의 태도에 실망이 크니, “이제는 미국이 상응하는 화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통한 소식통은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비핵화와 관련해 내부 설득이 중요한데, 제재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태도가 완강해 고민이 클 것”이라며 “이번 글은 북-미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그런 고민을 거친 표현으로 드러낸 셈”이라고 짚었다.
지난 1일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장을 찾아 “적대세력들이 우리 인민의 복리 증진과 발전을 가로막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굴복시켜보려고 악랄한 제재 책동에만 어리석게 광분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한 바 있다.
이런 사정에 비춰보면, 고위급회담에서 북쪽이 ‘제재 문제’를 강하게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반응과 함께, 북쪽이 ‘제재 완화’를 주장하며 미국 쪽에 내놓을 ‘물건’이 무엇이냐도 중요하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이번 회담은 진전을 위한 담판”이라며 “북쪽도 어쨌든 절충의 필요성을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일 “검증이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외교안보 분야 고위 인사는 “폼페이오 장관이 ‘완전한 비핵화’보다 ‘검증’에 초점을 맞춰 강조한 대목은 전보다 진일보한 느낌”이라고 짚었다. 영변 핵시설 검증을 매개로 북-미가 합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이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미 고위급회담은 7일 뉴욕에서 폼페이오 장관 주최 만찬, 8일 본격 회담을 하는 일정이다. 회담에 나설 북쪽 인사로는, “카운터파트인 ‘2인자’와 일련의 대화를 할 것”이라는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을 근거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제훈 선임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