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가 한동안 완화되지 않더라도 남북 교류협력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남북 협력의 인프라를 마련하는 게 대표적이에요. 미국 정부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물샐틈 없이 차단하고 있지만 코카콜라 상표를 북한에 등록하는 것과 같은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교류는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어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금까지 채택한 대북 제재 관련 10개 결의에도 지식재산권 교류를 직접적으로 금지·제한하는 규정이 없어요.”
김광길 변호사의 분석이자 제안이다.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처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국민 재산권 침해” 행위라며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이 낸 헌법소원을 대리한 김 변호사가, 이번엔 ‘장기 제재 국면 속 남북 교류협력의 법적 인프라 강화 방안’을 제안하고 나섰다.
김 변호사는 2004년 개성공단이 문을 열 때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법무팀장으로 일했다. 개성공단에 상주하며 북쪽 관계자들과 협상해 교류협력의 법적 인프라를 구축한 실무 책임자다. 그 과정에서 북쪽 사람들과 술·담배·험한소리를 나누며 ‘애증의 관계’를 쌓았다.
김 변호사는 개성공단 법무팀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지금껏 남북관계의 자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2014년엔 중국 옌벤대학에 교환교수로 1년 정도 머물며 북한법률 등을 연구했고, 나진하산프로젝트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뒤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최근 법무법인 지평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북한법 실무 분야 전문가’로서 활동 폭을 넓히려는 뜻에서다. 지난달 27일엔 지평의 ‘북한투자지원센터’가 주최한 ‘대북제재와 남북경협, 그 현황과 전망’ 세미나에서 ‘미국 독자제재: 제재 내용과 예외, 면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로펌 변호사, 금융기관과 경협 기업 관계자, 정부 관계자 등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재 내용을 세부 사항까지 정확히 파악해야 할 직업적 필요가 강한 전문가들이 수백석의 청중석을 매웠다.
그는 대북 제재의 법적 해석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가다. 개성공단 초대 법무팀장으로서 미국의 대북 제재를 어기지 않고 개성공단을 활성화할 법적 기반을 다져야 하는 직업적 의무가 실마리가 됐고, 남북·북-미 관계 악화에 따른 북쪽의 핵·미사일 시험과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의 악순환 속에 ‘한국인으로서 책임의식’이 동력이 됐다.
김 변호사는 5일 오후엔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실 주최로 열릴 토론회에서 ‘남북 지식재산권 교류와 대북제재’를 주제로 발표한다. 김 변호사의 지적처럼,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의 ‘대북제재 규정’을 보면 “북한 내 특허, 상표, 저작권 또는 기타 형태의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아래의 모든 거래들은 허용된다.… 그 지식재산권과 직접 관련된 북한인에 대한 지급을 포함한다. … 북한 정부에 대한 수수료의 지급, 미국 또는 북한 내 변호사 또는 대리인에 대한 합리적이며 통상적인 수수료와 보수의 지급을 허용한다”고 명시적 허용 규정을 두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에 대해 “미국이 유독 북한과 지식재산권 교류를 제재 예외로 명시한 건, 정보 교류 확산을 민주주의의 생명선으로 여기는 철학적 태도는 물론 미국의 강력한 지식재산권 보호 정책과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라고 풀이했다.
“남북의 사회·경제·문화 분야 등의 교류가 본격화하기에 앞서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인프라 구축 사업에 나설 필요가 있어요. 더구나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에서 ‘과학·기술상의 권리 보호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한 바 있어요.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속도를 낼 필요가 있어요.” 김 변호사가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고 해도 미국의 정치적 지지를 얻어가며 남북협력 사업을 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라며 내놓은 제안이다. 실제 남북은 “기본합의서 ‘제3장 남북교류·협력’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2조 2항에서 “남과 북은 쌍방이 합의해 정한 데 따라 특허권, 상표권 등 상대측 과학·기술상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고 합의했으나, 관련한 후속 합의를 마련하지 못했다.
김 변호사는 “중국과 대만이 ‘양안 지식산권보호합작협의’(2010년 6월29일)에 서명했는데, 남북 당국도 이를 참고해서 ‘남북 지식재산권보호 합의’를 맺어 관련 교류를 촉진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제안했다.
글·사진/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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