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 철도 북측구간 남북 공동조사에 참가하는 남측 조사단원을 태운 버스가 8일 오전 동해선육로 비무장지대 구간을 통과해 북한으로 향하고 있다. 고성/연합뉴스
남과 북은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을 열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 명시한 “올해 안 착공식”을 정상 합의대로 이행하기로 한 것이다. 북-미 협상 교착과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여부를 둘러싼 혼란의 와중에도 남북의 협력 의지가 굳건하다고 안팎에 알리려는 선택으로 풀이된다. 다만 착공식을 하더라도 대북 제재 탓에 실제 공사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실질적 의미보다는 상징적 이벤트의 성격이 강하다.
통일부는 13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진행한 실무회의 결과,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착공식을 개최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며 “착공식에는 남북 각기 100명 정도 참석할 예정이며, 구체적인 사항은 추후 계속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판문역은 경의선 철도 북쪽 최남단 기차역이다.
남북은 착공식의 의미를 한껏 돋우려고 참석자를 되도록 고위급으로 하자는 데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착공식 때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는 구상은 하지 않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터라, 현재로선 남북 정상이 참석할 가능성이 낮다.
앞서 2일 문 대통령은 뉴질랜드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이뤄진 기자간담회에서 “(남북 철도·도로와 관련해) 착공 연결하는 것은 국제 제재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면서도 “착공이 아니라 어떤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착수식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공사 시작’은 제재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현실의 어려움을 염두에 둔 발언이자, 상징적 이벤트로서 ‘착공식’이라도 반드시 연내에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도 13일 브리핑에서 착공식을 하더라도 “실제 공사에 들어가려면 추가 조사와 기본설계 등이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착공식은 앞으로 철도·도로 연결·현대화 사업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남북의 의지를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사실 동해선 도로 북쪽 구간 공동조사는 아직 일정조차 잡지 못한 상황이라 ‘26일 착공식’ 합의는 실무기술적 판단보다 ‘남북 협력 메시지 발신’이라는 정치적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남북이 이번 실무회의에 관례와 달리 개성 공동사무소에 상주하는 김창수 사무처장과 황충성 부소장을 대표로 내세운 것도, 그간 ‘물밑 협의’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남북은 경의선 북쪽 구간 도로(8월13~20일)와 철도(11월30일~12월5일) 공동조사는 끝냈고, 동해선 철도 공동조사는 8~17일 일정으로 진행 중이다.
남북은 최근 △비무장지대 시범 철수 지피(GP·감시초소) 상호 검증(12일) △북한 탁구선수단 방남(11일) △보건의료 실무회의(12일) △산림협력 대표단 평양 방문(11~13일) △2차 체육분과회담(14일) 등 기존 합의 사항을 착실하게 이행하며 협력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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