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70년간의 단절이라는 긴 터널의 끝에 서 있습니다. 이제 한 걸음이면 밝고 희망찬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담대한 의지로 우리 함께 갑시다.”(김현미 국토교토부 장관)
“통일의 기적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질 그날을 위해 역풍에 흔들림 없이 똑바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김윤혁 철도성 부상)
남북은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열린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서 한반도 종단 철도·도로 연결의 오랜 꿈을 현실화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이렇게 강조했다.
김현미 장관은 착공사를 통해 “오늘의 착공식은 평화와 화합을 다짐하는 자리”라며 “남과 북을 이어준 동맥은 동북아 상생번영의 대동맥이 돼 우리의 경제지평을 대륙으로 넓혀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윤혁 부상은 “오늘 이 착공식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함께 동북아와 유라시아를 넘어 세계 공동번영을 적극 추동하는 새로운 동력이 출현하는 역사적 시간”이라고 짚었다. 남북 고위급회담 북쪽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착공식이 “감개무량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26일 오전 북측 판문역에서 열리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 참석자 등을 실은 열차가 판문역에 도착, 기다리고 있던 북측 열차와 나란히 서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판문역 행사장엔 “온겨레의 염원을 담아 새로운 평화의 길을 열어나가자”, “민족의 혈맥을 이어 평화번영의 미래를 열어나가자”고 적힌 펼침막이 내걸렸다. 판문역 왼쪽으론 남북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오른쪽으론 대립과 경쟁의 상징인 160m 높이 인민공화국 깃발로 유명한 판문리(기정동)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4·27 판문점 선언 발표 직후 남북 철도도로 협력 사업에 써달라며 1천만원을 남북협력기금에 기탁한 권송성 할아버지는 착공식에 참석한 뒤 “우리는 36년 동안 나라 없이 살았고 70년간 (분단으로) 갈등하며 살았다”며 “이 갈등과 아픔을 서로 보듬고 하나돼 부강한 민족을 만들어놓아야 후손들이 잘 살 수 있다”고 호소했다.
착공식은 개식 공연, 착공사, 침목 서명식, 궤도 체결식, 도로표지판 제막식, 폐식 공연 순으로 1시간 남짓 진행됐다. 착공식엔 남북 대표단 외에 중국·러시아·몽골의 교통 분야 고위인사와 주한대사들이 참석했다. 러시아는 서울·평양 주재대사가 모두 참석했다.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는 “남북 철도가 되도록 빨리 연결돼 중국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며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했다. 양구르 소드바타르 몽골 도로교통개발부 장관은 “협력 사업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토카레프 러시아 교통부 차관도 “앞으로 (동)아시아철도공동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모두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제안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이 현실화할 때 참여할 주요국 대표들이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 참여국엔 남북한과 중국·러시아·몽골 외에 미국과 일본도 있다. 하지만 미·일 정부 대표는 이날 착공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북 제재 유지·강화를 견지하는 정책 기조의 연장선이다. 남북이 착공식과 함께 바로 실제 공사에 나서지 못할뿐더러, 축제의 마당이어야 할 이날의 착공식에 미묘한 긴장과 결연함이 혼재된 이유다.
남북 동서해선 철도, 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 참석하는 이산가족 김금옥 할머니가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출발, 판문역에 도착하는 열차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런 사정 탓에 통일부는 “실제 공사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 및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상황을 보아가며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주무장관인 김현미 장관은 “(착공식 이후) 실제로 공사하기 전까지 할 게 굉장히 많다”며 “일단 공동조사, 실태조사를 더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설계만 해도 1~2년이 걸린다”며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니 (실제 공사에 나설) 상황이 될 때까지 설계 등을 열심히 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착공식에 참석한 남쪽 대표단은 “함께 여는 평화, 번영”이라 적힌 펼침막을 내건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서울역과 판문역을 왕복했다. 이들은 '서울↔판문' 이동 구간과 ‘운임 1만4천원’이라 명시된 ‘승차권’을 받았다.
이제훈 선임기자, 판문역(개성)/공동취재단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