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위성이 21일 누리집에 공개한 레이더 탐지음 파일. 방위성은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포착한 레이더 탐지음이라며 ‘화기관제용 레이더 탐지음’과 ‘수색용 레이더 탐지음’ 파일을 올렸다. 일본 방위성 누리집 갈무리
한국 구축함(광개토대왕함)이 일본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준했다고 주장해온 일본 정부가 21일 일방적으로 ‘협의 중단’을 선언했다.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논리를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해 일단 발을 뺀 것으로 보인다.
일본 방위성은 이날 저녁 누리집에 ‘한국 해군 구축함의 자위대 화기관제 레이더 조사(비춤)에 관한 최종 견해’라는 성명을 올려 “한국이 상호주의에 입각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사실 인정에 응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아 실무협의를 계속해도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쪽과 협의를 계속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방위성은 그러면서 “일-한, 일-미-한 방위협력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안전보장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극히 중요하다”며 “일-한, 일-미-한 방위협력 지속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방위성의 성명은 기존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서도 논쟁은 더 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로 읽힌다. 방위성이 성명에서 한국의 책임과 재발 방지를 거듭 촉구한 데서도 주장의 정당성을 유지하겠다는 신호가 들어 있다. 그러나 국방부 안에서는 일본이 사실상 봉합 수순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애초 일본의 주장이 초계기의 착오나 오작동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당시 북한 어선 구조에 나선 우리 해경정도 사격통제 레이더와 유사한 주파수를 갖는 레이더를 가동했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실무협의에 일본 쪽 레이더 전문가가 참석하지 않은 것도 사실관계 규명 의지가 부족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방위성은 이날 성명과 함께 초계기가 포착했다는 ‘화기관제용 레이더 탐지음'과 ‘수색용 레이더 탐지음' 파일을 공개했다. 초계기는 탐지한 레이더 전자파를 음파로 전환하는 ‘레이더 경보 수신기’(RWR)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국방과학연구소(ADD)의 한 레이더 전문가는 “일본이 공개한 탐지음은 기계음으로 가공된 것”이라며 “일반적인 레이더 경보 수신기 소리와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공개한 파일에는 “일부 보전 조치를 취했다”는 설명이 달렸다.
국방부는 일본의 성명에 즉각 유감을 표시했다. 최현수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어 “일측이 제시한 전자파 접촉음은 우리가 요구한 탐지 일시, 방위각, 전자파의 특성 등을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기계음”이라며 “일측이 사실관계를 검증하기 위한 협의를 중단한다고 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최 대변인은 “이번 사안의 본질은 인도주의적 구조활동 중인 우리 함정에 대한 일본 초계기의 저공 위협비행이며, 이에 대한 재발 방지와 일측의 사과를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공고한 한-미 연합방위체제와 더불어 한-일 안보협력 강화를 위한 노력은 지속 발전시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일 방위협력을 강조한 일본 방위성의 성명과 맥을 같이한다. 한-일 갈등을 우려한 미국의 입장을 반영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의 주장에 한국이 맞대응하면서 국제여론전으로까지 비화했던 분쟁의 기억이 향후 한-일 관계에 앙금으로 남게 됐다.
유강문 선임기자, 노지원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m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