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국방·북한

미국의 적에서 친구된 4개국 ‘중재자·인도적 조처’가 밑돌 됐다

등록 2019-02-26 05:00

‘적대 청산’ 비슷한 길
①간극 다리놓는 ‘중재자’
리비아 핵개발 뒤 제재로 경제위기
영 블레어가 부시 설득해 관계개선
쿠바와 미국 화해엔 ‘교황 편지 정치’
북·미 해빙, 한국이 촉진자 역할 담당
②지도자 의지 전달 ‘특사’
닉슨-마오 미중정상회담서 성사까지
키신저 특사가 비밀리에 막후 활동
리비아 관계정상화 땐 ‘부시맨’ 활약
북-미는 폼페이오-김영철 라인 가동
③신뢰 구축할 ‘인도적 조처’
베트남, 참전 미군 실종자 수색 협조
미, 여행 금지 풀고 연락소 상응조처
중국과 ‘핑퐁 외교’ 스포츠 교류 시작
북, 1차 정상회담 뒤 미군 유해 송환
중국, 베트남, 리비아, 쿠바. 이들 네 나라는 미국과의 전쟁 또는 무력분쟁으로 빚어진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했다. ‘적에서 친구로’라는, 결코 쉽지 않은 관계의 전환에는 신뢰구축 조처라는 밑돌이 있었다. 북-미도 지난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서 “새로운 관계 수립”을 선언한 뒤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번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미국이 과거 적대국과 친구가 되는 과정 속에서 드러난 공통적인 신뢰구축 조처들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 중재자, 신뢰를 만들다 관계의 성격 바뀜에는 미국과 적대국들 사이의 깊은 간극을 이어주는 중재자가 있었다. 우선, 26년 동안이나 으르렁거렸던 미국과 리비아 사이에선 영국이 핵심적인 가교 구실을 했다. 리비아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핵 개발을 결정한 뒤 국제사회의 제재로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다.

2002년 9월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는 리비아의 국가원수인 무아마르 카다피에게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라고 권유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같은 달 블레어 총리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을 만나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면 이에 대한 상응조처로 관계 개선이라는 보상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듬해 3월 영국 런던에서 미국-리비아-영국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이 비밀리에 접촉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해 12월 리비아는 대량살상무기 개발 계획을 완전히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쿠바와 미국의 화해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이 활약했다. 교황은 2014년 6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두 나라에 수감된 정치범의 석방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교황은 넉달 뒤 미국과 쿠바의 대표단을 바티칸으로 초청해 협상 자리를 마련해줬다.

미-중 관계 개선에는 파키스탄의 역할이 컸다. 1969년 5월 윌리엄 로저스 미 국무장관은 ‘중국의 우방’인 파키스탄을 방문해 모하메드 아유브 칸 파키스탄 대통령을 만나 미-중 접촉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주미 파키스탄 대사는 이듬해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의 친서를 전달했다. 친서에는 미국 대통령의 특사를 중국에 초청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는 키신저 보좌관의 비밀 방중으로 이어졌고, 미-중 관계 개선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70년 적대 관계를 이어온 북한과 미국의 해빙에는 한국이 ‘촉진자’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단순한 중재를 넘어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고 타협안을 만들며 오랜 세월 쌓인 북-미 간 불신에서 기인하는 오해로 교착에 빠질 때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짚었다.

■ ‘특사’, 신뢰의 물꼬를 트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자신이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대리인’을 적대국에 보내 화해와 신뢰구축의 결정적 계기를 만든 사례도 적지 않다. 1971년 7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해 저우언라이 총리와 회담한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특사 자격으로서 키신저 보좌관의 방중은 백악관 주도의 ‘톱다운’ 방식으로 이뤄졌다. 신속히 협상을 진행하고 그 과정에 장애물이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닉슨 대통령은 이듬해 2월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상하이 공동성명’을 탄생시켰다. 23년 동안 적대 관계를 이어온 미-중이 두 손을 맞잡는 순간이었다.

미국-리비아의 관계 정상화 때도 양쪽 최고지도자의 특사가 막후에서 핵심 조력자 구실을 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인 커트 웰던 미 하원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2003년 런던경제대학에서 공부하던 카다피의 둘째 아들 사이프 카다피와 여러차례 접촉했다. ‘핵 개발 포기 대가로 경제제재를 없애는 게 리비아의 국익에 이득이 된다’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고 설득했다. 카다피의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는 2003년 리비아의 핵 포기 선언으로 이어졌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북-미 대화에도 ‘특사’가 등장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해 4차례 방북해 3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 위원장의 ‘복심’인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1차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해 6월1일과 2차 회담 직전인 지난달 18일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했다. 수차례 특사 교환으로 신뢰를 조성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두번째 만남과 성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지난 25년 동안 북-미 적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톱다운 방식을 빼고 모든 옵션을 다 썼지만 실패했다”며 “이번엔 지도자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이들이 상황을 주도해왔다는 면에서 과거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조성렬 전 수석연구위원은 “지도자의 결심을 정확히 전달할 뿐 아니라 협상에서 일정한 재량권을 갖고 있는 특사가 파견되면 상대국은 그를 신뢰하고 속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인도적 조치와 체육·문화 교류의 힘 미국과 베트남 사이의 신뢰 구축에는 베트남전에 참가한 미국인 포로·실종자 수색 및 유해 송환이라는 인도적 조처가 유효했다. 베트남전 직후인 1977년,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은 미군 실종자 수색 및 미국의 원조 제공을 골자로 하는 관계 정상화 문제를 풀기 위해 협상 대표단을 파견했다. 이후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특사를 보내 미국인 실종자로 추정되는 유해 수백구를 받아 왔다. 1991년 중순부터는 전쟁 포로 및 실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 사무실이 하노이에 설치됐다.

이에 미국은 베트남 정부의 인도적 조처에 상응하는 각종 신뢰구축 조처를 취했다. △베트남 외교관의 여행금지 조치 해제 △미국인의 그룹 여행 허용 △베트남에 대한 상거래·전화통신 허용 △연락사무소, 대사관 설치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300만달러 인도 지원 △국제금융기구의 베트남 원조 허용 △베트남 무역금지 조치 해제 등의 상응조처가 이어졌고 두 나라는 관계 정상화에 성공했다.

미국과 쿠바는 2009년 간첩 혐의로 쿠바 당국에 체포된 미국인 앨런 그로스의 석방을 위해 2013년부터 9차례 걸쳐 캐나다에서 비밀 협상을 진행했다. 두 나라는 앨런 그로스 등 미국인 2명과 1998년 미 당국에 체포된 쿠바 스파이 3명을 맞교환하는 문제를 성공적으로 합의한 뒤 이듬해인 2014년 12월 국교 정상화를 선언한다. 아울러, 1971년 4월 미국 탁구 선수 15명이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선수들과 펼친 ‘핑퐁외교’는 정치색이 옅은 스포츠 교류가 적대국 간 신뢰를 쌓는 교과서로 통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은 “정치적이지 않은 분야에서 신뢰를 조성하기 용이할 수 있다”며 “예컨대 북한의 태권도 시범단이 워싱턴에 가거나, 미국의 교향악단이 평양을 방문하는 등 문화 교류, 경제 분야 투자 사절단 파견 등이 북-미 간 정치적 해빙을 가져오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평화를 위해 당당한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1.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2.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3.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4.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5.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