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일행이 탑승한 열차가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하자,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왼쪽)과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열차에서 내려 주변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베트남 하노이에서도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은 곳곳에서 시선을 잡아당기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오빠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수행하는, 말 그대로 ‘최측근’이라고 할 만했다.
김 위원장이 베트남에 발을 딛는 첫 순간, 세계 언론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이도 김 부부장이었다. 중국을 가로질러 남행한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중국과 국경을 맞댄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26일 아침 8시13분(현지시각).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멈춰 선 열차의 문을 열고 김 부부장이 가장 먼저 나왔다. 검은색 치마 정장에 하이힐을 신은 김 부부장은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과 함께 레드카펫과 주변 상황을 꼼꼼하게 살폈다. 이어 카메라를 의식한 듯 가벼운 미소를 보이며 열차로 다시 들어갔다. 김 위원장은 그 뒤 1분이 지나 열차에서 내렸다.
열차에서 내린 김 위원장 뒤로 김영철·리수용·김평해·오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등이 권력 서열대로 섰지만, 김영철 부위원장 뒤에 있던 김 부부장은 이내 김 부위원장을 팔로 살짝 밀치고 김 위원장 근처에 섰다. 김 위원장이 받은 환영 꽃다발을 건네받기 위해서다. 상급자인 김 부위원장도 말없이 길을 터줬다. 이 장면을 두고도 일부에선 의전에 관한 한 김 부부장이 확고부동한 ‘실세’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 26일 새벽 중국 남부 난닝역에서 휴식을 취하며 담배를 피우자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크리스털 재질로 보이는 재떨이를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김 부부장은 이날 저녁 김 위원장이 첫 대외 일정으로 하노이 시내 북한대사관을 방문할 때도 동행했다. 그 뒤 김 부부장은 저녁 7시께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박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과 함께 회담 장소인 메트로폴 호텔을 직접 방문해 약 40분 동안 머무른 뒤 숙소로 돌아갔다. 정상회담장의 보안·경호 문제나 의전 상황 등을 직접 점검한 것으로 보이는데, 김 부부장이 단순한 수행 역할만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18일 오후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베트남에 도착하기 전 일본 <티비에스>(TBS) 방송에 잡힌 화면도 많은 화제를 낳았다. 이날 새벽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베트남과 가까운 중국 남부 난닝역에서 정차했을 때 김 위원장이 열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고, 그 옆으로 김 부부장이 재떨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7일 <시비에스>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이 장면에 대해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것보다 동생이 들고 있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다른 사람이 들고 있으면 아부한다고 그런다”고 촌평하기도 했다.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6월12일 오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미국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공동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부부장은 지난해 세차례 열린 남북정상회담과 첫 북-미 정상회담이었던 ‘6·12 싱가포르 회담’에서도 김 위원장을 밀착 수행하며 곳곳에서 활약했다. 중요 문서를 앞에 둔 김 위원장에게 따로 준비해 둔 펜을 건네거나 회담장에 함께 배석해 메모하는 일도 김 부부장의 몫이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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