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국방·북한

“피치 못할 난관”…김정은 간접화법으로 ‘협상’ 의지

등록 2019-03-01 20:53수정 2019-03-01 20:56

노동신문, 미국 비판없이 “문제해결 위해 생산적 대화 계속”
‘3차 정상회담’ 의중 드러내…한·중·러 ‘중재’도 에둘러 주문
리용호 외무상 한밤 회견 ‘노 딜’ 불리한 여론 차단 나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소식을 1∼2면에 걸쳐 보도했다. 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고, 생산적인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소식을 1∼2면에 걸쳐 보도했다. 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고, 생산적인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무산’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내놓은 메시지는 간명하다. ‘계속 대화’ ‘계속 협상’이다. 좀더 풀이하면 “생산적인 대화들”을 통해 3차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단계적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북-미 양국의 신뢰 수준에 맞게 ‘비핵화-상응조처’를 거래하자는 메시지다.

김 위원장의 메시지는 서로 다른 두 창구로 나왔다. 우선 <노동신문>으론 ‘총평·총론’을 밝혔다. 리용호 외무상의 심야 기자회견에선 ‘방법론·각론’을 밝혔다. 둘 다 메시지의 공식성이 높다. <노동신문>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다. 리 외무상은 북한의 공식 대외 창구다.

<노동신문>은 1일치 1·2면에 걸쳐 28일 하노이 회담 소식을 전했다. 신문 속 사진 13장에 담긴 김 위원장의 표정은 줄곧 웃는 모습이다. 기사는 1130자로 짧은 편인데, 대미 비판은 전혀 없다. 보도에 담긴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압축하면 “문제 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해서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상봉”(3차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신문은 하노이 회담을 “조미 관계를 두 나라 인민의 이익에 맞게 발전시키는 의미있는 계기”라고 평했다. 합의 무산은 ‘파탄’이나 ‘결렬’이 아니라 긴 과정에서 거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난관과 곡절”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70년 적대관계 속에서 쌓인 반목과 대결의 장벽이 높고 조미 관계의 새 역사를 열어가는 여정에서 피치 못할 난관과 곡절들이 있지만 서로 손을 굳게 잡고 지혜와 인내를 발휘해 함께 헤쳐나간다면 능히 두 나라 인민의 지향과 염원에 맞게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하시였다”는 문장이 그렇다. 아울러 두 정상이 “건설적이고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을 했다며, 김 위원장이 “새로운 상봉을 약속하시며 (트럼프 대통령과) 작별인사를 나누시였다”고 전했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오른쪽)이 1일 새벽(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데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 연합뉴스
북한 리용호 외무상(오른쪽)이 1일 새벽(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데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은 최선희 외무성 부상. 연합뉴스
리 외무상이 28일 자정 넘어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한 심야 기자회견은 내용과 형식 모두 전례가 없는 메시지 발신이다. 리 외무상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에서 밝힌 구상의 핵심 내용을 2쪽짜리 문서를 읽는 방식으로 세계 언론에 공표했다. 리 외무상과 동행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5분간 회견장에 모인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북쪽 당국자가 누군가를 거칠게 비난하지 않을 목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문답까지 진행한 선례는 찾기 어렵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요구한 게 제재 ‘전부 해제’가 아닌 ‘일부 해제’라고 언론에 알려 북쪽에 불리한 여론의 확산을 조기 차단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듯하다”며 “반박보다 해명 회견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회견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하노이에 준비해 간 ‘비핵화 조처’는 ①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 ②핵실험·장거리로켓발사 영구 중지 문서 약속이 핵심이다. ‘영변 폐기’와 관련해 ①범위·수준(“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 ②사찰·검증(“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③폐기 주체(“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 작업”)를 구체적으로 밝힌 대목이 눈에 띈다. 북핵 협상에 밝은 전직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사찰과 검증, 공동 작업을 전제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는 북쪽이 지금껏 한번도 내놓은 적이 없는 새로운 제안”이라고 짚었다.

리 외무상은 회견에서 “미국 측이 협상을 다시 제기해 오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짐짓 북쪽이 먼저 협상 재개를 요청하거나 ‘양보안’을 내놓을 가능성을 배제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김 위원장의 제안을 “조미 사이의 현 신뢰 수준”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처”라면서도 “신뢰 조성 단계를 거치면 비핵화 과정은 더 빨리 전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지를 둔 대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천명한 “단계적 동보적(동시행동) 조처”(2018년 5월7일 2차 북-중 정상회담)라는 ‘원칙’을 고수하되, 미국 쪽의 상응조처에 따라선 북쪽의 제안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을 품고 있어서다.

김 위원장이 “매우 진지한 협상 의지”(정부 고위 관계자)를 밝히고 있지만 한반도 정세는 당분간 “진전 없는 교착” 국면을 피하기 어려우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노이 회담에서 드러난 북-미 양국의 거래 조건 격차가 매우 크고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입지가 취약해서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영변은 북핵능력의 최소한 절반 이상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인 절충에 나서지 않고 협상을 중단해 매우 아쉽다”며 “정부가 창의적 방안을 마련해 역할을 할 때”라고 조언했다. <노동신문>도 하노이 회담이 “조선(한)반도와 지역,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는 의미 있는 계기”라는 평가로, 한국·중국·러시아 등의 ‘중재·촉진 역할’을 에둘러 주문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평화를 위해 당당한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1.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2.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3.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4.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5.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