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화는 입에서 온다”는 중국 속담과 같은 뜻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새겨야 할 경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을 관리하려 애를 쓰고 있다. 합의 무산에도 북-미가 정면충돌하지 않는 까닭이다. 일부 참모의 ‘거친 입’이 문제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그들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다. 살얼음판을 걷는 한반도 평화 과정을 좌초시킬까 두렵다.
회담 중단 뒤 북쪽의 첫 공식 견해를 밝힌 리용호 외무상은, 두 정상이 “훌륭한 인내력과 자제력”을 발휘했다고 강조했다. 실제가 그렇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앞으로도 긴밀히 연계해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노동신문> 1일치 1면)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 직후 회견에서 김 위원장과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며 “궁극적으론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상의 문을 닫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그런데 최선희 부상은 “이런 회담을 계속해야 될 필요가 있을 거 같지 않다”고 했다. ‘협상 중단’ 공식 선언은 아니다. “개인적인 느낌”이란다. 메시지는 모호한데 한껏 자극적이다. 민감한 시기에 불필요한 첨언이다.
‘초강경파’ 볼턴 보좌관은 3일(현지시각) <폭스뉴스>에 나와 “최대의 압박은 계속될 것이고 김정은한테 진짜 충격(real impact)이 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달리 ‘위원장’이라는 직함도 붙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훌륭한 지도자”라고 추어올린 상대국 최고지도자의 이름을 직함 없이 부르는 건 고위 참모로서 결격이다. 아니면 노회한 도발이거나.
최 부상과 볼턴 보좌관은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이 지난해 5월 한번 엎어지게 한 원인 제공자다. 최 부상이 ‘리비아 모델’을 주장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볼턴 보좌관을 실명 비난하며 “핵 대 핵 대결” 운운하는 담화를 내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들의 최근 담화가 보여준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개심”을 이유로 회담 취소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볼턴 보좌관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그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는 담화를 낼 정도로 북쪽에선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한번 좌초한 싱가포르 회담은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는 김 제1부상의 긴급 수습 담화(2018년 5월25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판문점 긴급 정상회담’(2018년 5월26일)으로 가까스로 되살아났다.
북-미 양쪽의 ‘거친 입들’은, 외교관을 언어의 연금술사라 부르는 까닭을 되새기기 바란다. 당신들의 ‘입’에 놀아나기엔 한반도 8천만 시민·인민의 삶이 엄중하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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