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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구멍난 철모, 녹슨 물통…70년 만에 나온 전쟁의 상흔

등록 2019-05-29 16:06수정 2019-05-29 16:36

철원 화살머리고지 유해 발굴 현장 르포
발굴 두달만에 한국전쟁 전사자 추정 유해 325점
총·방탄복·철모·계급장 등 유품은 2만3055점 등 발견
전쟁 70년만에 처음으로 비무장지대서 유해 발굴
5월28일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병사가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철원/노지원 기자
5월28일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병사가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철원/노지원 기자
찌그러진 철제 물통에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 총열에는 미처 다 쏘지 못한 총알이 그대로 남았다. 녹이 슨 철모는 총알 여러발이 뚫고 지나간 듯 구멍이 숭숭 뚤렸다.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전쟁의 상흔이다.

70년 가까이 땅속에 묻혀 있던 전쟁의 상처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28일 찾아간 철원 화살머리고지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 11월부터 1953년 7월까지 한국·유엔군과 북한·중공군 사이 전투가 네 차례나 이뤄진 곳이다.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과정에 한국·유엔군 300여명, 북한·중공군 3000여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한국 군 당국은 지난 4월1일부터 두 달 가까이 이 지역에서 지뢰제거 등 남북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기초 작업을 진행 중이다. 화살머리고지는 6월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비무장지대 평화의길 철원 구간’의 맨 마지막 방문지인 철원 비상주 감시초소(GP)와 가까이 있다. (☞관련기사: 6월 1일부터 비무장지대 평화의길 '철원' 구간도 열린다) 이 감시초소에 올라 북쪽을 보면 바로 눈 앞에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현장이 펼쳐진다.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된 유품이다. 이 물통은 한국, 유엔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지원 기자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된 유품이다. 이 물통은 한국, 유엔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지원 기자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된 유품이다. 이 철모는 한국, 유엔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지원 기자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된 유품이다. 이 철모는 한국, 유엔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지원 기자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된 유품이다. 총열에 총알이 아직 남아 있다. 노지원 기자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된 유품이다. 총열에 총알이 아직 남아 있다. 노지원 기자
무성히 자란 풀과 나무로 초록이 짙은 가운데 벌건 살을 드러낸 화살머리고지 산사면이 눈에 들어온다. 유해발굴을 위해 사면에 난 풀을 다 쳐내느라 민둥산 같아 보인다. 전날 비가 온 탓인지 땅에서는 묵직한 흙 냄새, 쌉쌀한 풀 내음이 풍겼다. ‘사각사각….’ 발굴병들이 호미질하는 소리, ‘붕∼’ 공기압축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이 기초발굴을 위해 공압기를 이리저리 움직이자 흙이 사방으로 흩어져 흙 바람이 일었다. 28일 오전 10시께 화살머리고지에서는 두 시간 전부터 시작된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화살머리고지 능선에서 45도 각도로 비탈이 져 있는 산사면 곳곳에서 지뢰제거와 기초발굴이 진행됐다.

2m 깊이의 구덩이가 여럿 보였다. 군 관계자는 이를 ‘대피호’라고 설명했다. 화살머리고지 능선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병사들이 적의 기습공격에 대비해 안전하게 이동하려고 파 놓은 교통호가 나왔는데, 그 능선 바로 아래 사면에서 대피장소인 대피호가 발견됐다. ‘동굴 진지’라고도 불린다. 8명 정도가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발굴 초기에는 교통호는 총 길이가 300m 정도이고, 동굴 진지는 28일 현재까지 발견된 것만 12개다. 혼자 숨어있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개인호’는 30여개 발견됐다고 한다.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동굴 진지(대피호)다. 2019년 5월 28일 현장 관계자가 동굴 진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지원 기자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동굴 진지(대피호)다. 2019년 5월 28일 현장 관계자가 동굴 진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지원 기자

28일 현재 화살머리고지에서는 한국전쟁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가 325점(50여구로 추정)이나 나왔다. 두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동안 총이나 방탄복, 철모, 물통, 계급장 등 유품은 무려 2만3055점, 지뢰는 138발, 불발탄 2180발이 발견됐다. 현재 군 당국은 지뢰제거 등 기초적인 발굴만 하고 있는 상황인데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하게 되면 더 많은 유해와 유품 등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유해발굴은 ‘비무장지대’에서는 처음 이뤄진다는 면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군 당국은 2000년부터 한국전쟁 당시 전투가 치열했던 지역에서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관련기사: 68년간 북녘 땅 잠든 20살 송 일병, 언제쯤 집에 돌아오나) 하지만 9·19 군사합의 전까지 비무장지대에서 유해 발굴이 이뤄진 적은 없다. 70년 가까이 아무런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물론, 사람의 손길조차 닿지 않아 실제 발굴되는 유해나 유품도 다른 발굴 지역에서의 것보다 훼손되거나 손실되는 부분이 적다고 한다. 지난 4월1일 이후 이 지역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유해, 네 사람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같은 곳에서 한꺼번에 나왔다. 강재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장은 “비무장지대가 아닌 남쪽지역 발굴현장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유품들, 한국 전쟁 당시 유품과 유해가 그대로 보존된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동굴 진지(대피호)에서 발견된 유품들. 2019년 5월 28일 모습이다. 노지원 기자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동굴 진지(대피호)에서 발견된 유품들. 2019년 5월 28일 모습이다. 노지원 기자
유품도 많이 발견된다. 최근 발견된 가로·세로 3m, 깊이 2m짜리 동굴 진지(대피호)에서는 탄약과 탄피가 100여발 이상 발견됐고, 전투화, 방탄조끼, 손전등, 총알, 화장품 병, 물통, 컵, 탄창, 총기손질기름통, 스냅단추, 칫솔 등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으깨진 두개골 조각이 담긴 철모도 나왔다. 유품으로 미뤄볼 때 한국군이 사용하던 동굴 진지로 보이며 철모에 담긴 두개골도 한국군의 유해인 것으로 보인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강재민 팀장은 “동굴 진지 안에 철근과 통신·전화선으로 쓰였을 야전선을 엮어서 의자 형태로 만든 모습이 보인다”며 “이 안에서 나온 유품을 보면 작전을 하거나 또는 휴식을 취하는 하는 장소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적군이 인해전술로 밀고 올라오니 동굴같은 곳에 숨어 포병사격을 요청해 상대를 섬멸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2019년 5월 28일 역곡천의 모습. 노지원 기자
2019년 5월 28일 역곡천의 모습. 노지원 기자

화살머리고지 능선에 올라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지난해 북한이 공동유해발굴에 앞서 지뢰제거 작업을 하기 위해 냈던 오솔길이 보인다. 이 길은 군사분계선을 관통해 남과 북을 연결하고 있지만, 아직은 왕래가 없다. 화살머리고지에서 군사분계선까지는 불과 500m다. 고지 바로 옆에는 공작새능선과 또 다른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가 자리해있다. 이 언덕들 사이로 물이 흐른다. 이 물줄기는 군사분계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락 내리락한다. 그래서 이름이 ‘역곡천’이다. 곡선을 그리며 북에서 남으로, 또 남에서 다시 북으로 거슬러 흐른다는 의미란다.

현재 한국 군 당국은 9·19 남북 군사합의서 이행을 위해 약속대로 4월1일부터 유해발굴을 위한 기초작업을 하고 있다. 애초 남북이 공동 발굴 작업을 하기로 했지만, 북쪽에서 약속된 날짜에 발굴을 시작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일단 한국 군 당국이 먼저 발굴을 시작했다. 향후 공동발굴을 위해 지뢰제거 등 기초작업 하고 있다. 지뢰제거 작업을 하던 도중 유해가 많이 발굴되는 구역은 기초적인 발굴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기초발굴 면적은 28일 현재 1만2650㎡, 지뢰제거 면적은 14만9000㎡, 유해발굴 전체 면적은 16만1650㎡다.

군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북쪽 감시초소에서 남쪽의 유해발굴에 대해 북한군이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지난해에는 남쪽에서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북쪽에서 나와 일일이 확인했지만 올해는 전혀 그런 움직임 없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얘기다.

철원/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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