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제2기 제7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에서 당선된 군부대들의 군인가족예술조조경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이날 공연에는 최근 <조선일보>가 노역형에 처해졌다고 보도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흰색 원)이 배석했음이 확인됐다. 연합뉴스
1986년 11월16일치 <조선일보> 1면에 ‘김일성 피격설’이 실렸습니다. “북괴 김일성이 암살됐다는 소문이 15일 나돌아 동경 외교가를 긴장시켰다…이 소문의 내용은…결국 김(일성)을 암살했다는 것으로 돼 있다.” <조선일보>는 이틀 뒤인 11월18일치엔 “주말의 동경 급전…본지 ‘세계적 특종’”이라는 자랑을 포함해 12개면 중 7개면을 ‘김일성 사망’ 기사로 도배했습니다. “북괴는 16일 전방지역에서 대남 확성기 방송을 통해 김일성이가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방송을 실시했다”는 11월17일 이흥식 국방부 대변인의 발표가 힘을 실어줬습니다. 그런데 독자들이 <조선일보> 기사를 다 읽기도 전인 11월18일 오전 10시23분 <유피아이>(UPI) 통신이 김일성 주석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몽고 국가원수 잠빈 바트문흐 총서기를 맞이했다고 전했고, 이는 사실이었습니다. 주한미군 쪽은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이 없었다”고 <로이터>에 밝혔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과 <조선일보> 등 한국 언론은 ‘세계적 개망신’을 당했습니다. 북한 관련 ‘오보 흑역사’에서 첫손에 꼽히는 사례입니다.
통일외교팀의 이제훈입니다. 1998년 여름부터 한반도 문제를 취재·보도해왔습니다. 오늘은 북한 관련 보도엔 왜 유독 오보가 많은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북한 관련 오보에는 ‘숙청·처형설’이 가장 흔합니다. ‘산사람 죽이기’가 잦습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도 ‘죽었다가 부활’했습니다. 판타지 월드입니다. “김정은 옛 애인(보천보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 등 10여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 ‘복수의 대북 소식통’이 근거인 2013년 8월29일치 <조선일보> 6면 기사입니다. 2014년 5월16일 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죽은’ 현송월이 참석한 사실이 <조선중앙텔레비전>으로 확인됐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사업 전면 중단’을 발표한 2016년 2월10일 통일부는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이 처형됐다’는 내용의 문건을 ‘대북 소식통’을 출처로 해달라며 기자들한테 건넸습니다. ‘잔혹한 김정은’ 이미지로 공단 폐쇄 반발 여론을 누르려는 ‘공작’입니다. 처형됐다던 리영길은 석달 뒤인 5월9일 노동당 중앙위 7기 1차 전원회의에서 중앙군사위원에 선임됐습니다.
이런 오보엔 유사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출처가 ‘소식통’입니다. 공무원(또는 정무직 공무원)으로 범위를 좁힐 수 있는 정부 (고위)당국자·관계자와 달리 소식통은 권력 핵심일 수도, ‘듣보잡’일 수도 있습니다. 소식통은 정체불명, 유령입니다.
최근에 문제가 된 “김영철은 노역형, 김혁철은 총살”이라는 지난달 31일치 <조선일보> 1면 기사의 근거도 “북한 소식통”입니다. 취재보도의 불문율인 교차확인이 있었다는 확증이 기사엔 없습니다. “자강도에서 강제 노역 중”이라던 <조선일보> 보도와 달리,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2일과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공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취재 실마리에 불과한 소문 수준의 ‘첩보’가 사실이라 확신할만큼 체계적 검증을 거쳐야 하는 ‘정보’로 둔갑해 기사화되는 일이 왜 이리 잦을까요?
첫째, ‘북한’은 직접 취재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 ‘면피 사유’입니다. 당사자·현장 확인은 커녕 전화 취재도 안 됩니다. 둘째, 북한 당국은 ‘오보 대응’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오보 기자가 언론중재위나 법정에 설 위험이 없습니다. ‘아니면 말고’는 차고넘치는데 이를 바로잡는 보도는 드문 까닭입니다. 셋째, ‘북한’에 대한 의식·무의식적 경멸·증오·편견은 이중잣대와 음모론, 괴벨스식 선전선동과 정보조작의 온상입니다. 예컨대 군사연습도 남쪽이 하면 ‘철통 안보’가 되고 북쪽이 하면 ‘군사도발’이 되는 식입니다. 북한이 88올림픽을 방해하려고 서울 수공용 금강산댐(최대 담수량 200억톤)을 짓고 있어 평화의 댐을 지어야 한다며 국민의 쌈짓돈 741억원을 뜯어낸 ‘정권·언론 합작 사기극’은 괴벨스식 정보조작의 전형입니다.
마무리 인사 겸 질문. 모든 신문이 전날 일어난 ‘다뉴브의 참사’를 전하느라 정신없을 때, <조선일보>는 왜 ‘김영철 노역형’ 기사를 앞세우는 무리수를 뒀을까요? ‘단독’을 확신했다면 보도를 하루 늦출 수도 있었을텐데.
이제훈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