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차 북중 정상회담 둘째날인 지난 1월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사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1일 방북의 의미’를 스스로 밝힌 “중조 친선을 계승하여 시대의 새로운 장을 계속 아로새기자”라는 제목의 글이 <노동신문> 19일치 1면에 실렸다. 방북을 앞둔 중국 최고지도자의 <노동신문> 기고는 북-중 관계 70년사에 처음이다.
시 주석이 전례없는 방식으로 밝힌 방북의 의미는 국제사회를 향한 메시지와 북한 내부용 메시지로 나뉜다. 시 주석은 비핵화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 과정과 관련해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나갈 것”이라고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아울러 “조중 친선”을 강조하며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대내외 정책 노선이 ‘정당하다’는 자신의 평가를 <노동신문> 기고문이라는 전례없는 형식으로 밝혀 ‘김정은 리더십’을 적극 지지해, 김 위원장의 ‘결단’에 필요한 분위기 조성에 공을 들였다. 북-중 관계에 정통한 전직 고위관계자는 “북한을 안심시키고 핵문제 해법에서 진전을 이루겠다는 게 핵심”이라며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시그널이다”라고 평가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김 위원장에 대한 시 주석의 매우 높은 수준의 예우”라며 “김 위원장의 통치에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사회용 메시지와 관련해, 시 주석은 “중국측은 조선동지들과 함께 손잡고 노력하여 지역의 항구적인 안정을 실현하기 위한 원대한 계획을 함께 작성할 용의가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지역의 항구적 안정’이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합의한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4·27 판문점선언)와 사실상 같은 뜻이다. 특히 시 주석은 “의사소통과 대화, 조율과 협조를 강화하여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대화를 통하여 조선측의 합리적이 관심사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덧붙여, 북쪽의 의지와 무관하게 중국이 일방적으로 움직이지는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중국 전문가인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중국연구소장)는 “‘합리적 관심사’라는 표현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크게 보면 체제안전(보장)의 문제, 작게 보면 제재 (완화·해제) 문제다”라고 풀이했다.
아울러 시 주석은 “우리는 조선측 및 해당측들과 함께 의사소통과 조율을 강화하고 조선반도 문제와 관련한 대화와 협상에서 진전이 이룩되도록 공동으로 추동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해 적극 기여할 것”이라며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당사국과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 주석은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비핵화” 또는 “핵”이라는 단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17일 시 주석의 방북 일정을 공식 발표하며 “한반도 비핵화 방향을 견지하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가 새로운 진전을 거두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내부용 메시지’와 관련해 시 주석은 “(북중 양국의) 이 우정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중조친선협조관계를 공고 발전시킬 데 대한 중국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변할 수도 없습니다”라고 확약했다. 이는 지난해 6월 김 위원장과 3차 정상회담 때 시 주석이 한 약속을 재확인한 것이다. 시 주석은 원고지 13장(제목 포함 2056자, 548 단어) 분량의 기고문에서 “친선”을 16차례나 언급했다.
특히 시 주석이 “중조관계는 새로운 역사적 출발점에 섰다”라며 “중조관계의 설계도를 잘 작성하고 중조관계 발전의 방향을 잘 틀어쥘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이 눈에 띈다. 20~21일 정상회담에서 어떤 식으로 구체화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쑹타오 부장은 “중조관계는 공고하다”며 그 근거로 ‘인접국’이며 ‘정치적 우의가 높다’는 기존의 평가 기준에 더해 ‘민간 우의’와 ‘경제적 상호보완성’을 강조했다. 특히 ‘경제적 상호보완성’은 중국 쪽이 처음 공개 거론한 내용이라 주목을 요한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더 심화시켜가고 북한도 경제 건설에 올인하기로 한 터라 기존 혈맹에 기초한 북-중 관계보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양국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걸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제훈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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