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문제 정치적 해결 지지” ‘김정은 구상’ 전할 듯
트럼프 반응 주목…청와대 “비핵화 대화 조기 재개 기대”
시진핑, 안보·경제 지원 약속하며 ‘비핵화 결단’ 권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맨 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 둘째)이 20일 저녁 평양 5·1경기장에서 ‘조(북)-중 우호 70년’ 기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불패의 사회주의’를 관람하기 위해 들어서자 평양 시민들이 두 나라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평양/신화 연합뉴스
“회담은 논의된 문제들에서 공통된 인식을 이룩하였다.”(21일 <노동신문>)
“나(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동지의 조(북)중 관계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전망 계획에 완전히 동의한다.”(20일 <신화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20일 평양 정상회담에 대한 북·중 양국 언론의 보도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북·중 정상이 ‘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 과정 협상 전략에서 ‘공통 인식’을 도출했다는 뜻이다.
초미의 관심사인 ‘핵 문제’와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의 ‘새로운 제안’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양국 언론 모두 조심스레 언급을 피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의 ‘핵 문제’ 관련 협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것이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다. 김 위원장의 속내를 파악한 시 주석이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등과 연쇄 회담을 하며 후속 협의에 나설 예정이어서다. 특히 시 주석이 전할 ‘김정은의 메시지’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핵심이다. 문 대통령도 오사카에서 시 주석한테서 ‘김정은 메시지’를 듣고 협의한 뒤, 29~30일 서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후속 대책 협의에 나선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이번 북-중 정상회담과 조만간 개최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대화 및 협상이 조기에 재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요컨대 이번 북-중 정상회담 결과가 ‘고장난 펌프’에서 시원한 물을 쏟아지게 할 ‘평화의 마중물’이 될지, 꿀럭꿀럭 소리만 요란한 ‘실패한 노력’이 될지는 오사카와 서울에서 진행될 동북아 당사국의 연쇄 양자회담이 끝나면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초 시작된 한반도 평화 과정이 다시 속도를 낼지, 오랜 냉전적 갈등과 적대의 악순환에 다시 빠질지를 가를 ‘운명의 시계’가 돌기 시작했다.
북·중 매체의 보도만으로도 확인되는 게 여럿 있다. 김 위원장은 ‘협상 노선 유지’를 확약하고, 시 주석은 ‘한반도 평화 과정 적극 역할’을 다짐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일단은 정세 안정에 보탬이 되는 성과다.
다만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이 ‘평양 회담’에 부여한 의미와 관련한 북·중 매체의 보도엔 강조점의 차이가 있다. 두 정상의 서로 다른 처지와 무관하지 않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내부 동요’를 잠재우고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고수하려면 시 주석의 ‘정치적 지지’가 절실하다.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의 방북을 “조중친선의 불변성과 불패성을 온 세계에 과시하는 결정적 계기”이자 “우리 당원들과 인민들에 대한 커다란 정치적 지지 성원”이라고 평가했다고 <노동신문>이 전한 까닭이다. <노동신문> 21일치는 평소보다 4개면 많은 10개면인데, 8개면이 북-중 정상회담 소식이다. 열쇳말은 “조중친선 불패성 과시”다.
반면 미-중 ‘무역·첨단기술·플랫폼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는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립 전선을 ‘북한 문제’로까지 일부러 확대할 여유가 없다. 오히려 한반도 정세 안정이 절실하다. 김 위원장의 ‘협상 노선’ 지속은 필수이고, 김 위원장의 ‘결단’까지 이끌어낸다면 금상첨화다. 시 주석이 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추진하기 위함”을 이번 방북의 양대 목적 가운데 하나로 강조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한 배경이다.
북·중 매체가 전한 시 주석의 발언은 섬세한 해석이 필요하다. 시 주석은 20일 환영만찬 답례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새로운 전략노선 실시”와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 추동”을 “확고부동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노동신문>이 전했다. 김 위원장의 ‘경제집중 전략노선’과 ‘협상노선’ 전폭 지지다. 시 주석은 한발짝 더 나아가 “북한의 합리적 안보와 발전 우려 해결을 위해 가능한 모든 도움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확약했다. 그러고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지지하며, 문제의 해결을 위한 조건을 쌓아가고 만들겠다”고 밝혔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요컨대 시 주석은 집권 뒤 첫 방북을 통해 ‘김정은 리더십’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선언하며, 김 위원장한테 ‘안보·경제 문제에서 중국이 적극적으로 도울 테니 결단을 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협상 궤도 이탈은 절대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시진핑의 지지’라는 새로운 ‘권력 자원’을 대미 버티기에 활용할지, 다시 적극적인 협상 추진의 안전판으로 활용할지는 <노동신문>의 보도 내용만으론 확실하게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김 위원장이 시 주석에게 “완전히 동의한다”며 “중국의 경험과 방법을 많이 배워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에 적극 힘을 쏟고자 한다”고 밝혔다는 <신화통신> 보도에 비춰보면, 김 위원장이 ‘삐딱선’을 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는 않다.
관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껏 ‘시진핑의 개입’에 부정적 태도를 보여왔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의 2차 정상회담(2018년 5월7~8일, 다롄) 직후 “중국에 조금 실망했다. 김정은이 시 주석을 만난 뒤 태도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불평하고는 이내 1차 북-미 정상회담 계획을 취소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 북-중 정상회담과 관련해선 ‘트럼프답지 않게’ 아직까지 아무런 공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사카에서 시 주석을 만나 ‘김정은의 메시지’를 들은 뒤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세계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