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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민주평통에서 극단적 이념 갈등 중화시킬 잠재력 봤죠”

등록 2019-06-23 18:11수정 2019-06-23 20:05

[짬]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황인성씨

황인성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민주평통 제공
황인성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민주평통 제공

“전에는 집권당의 정책홍보기구, 관변단체, 지역유지 위주의 폐쇄 조직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생각이 달라졌다. 한국사회의 극단적 이념 갈등과 불신을 극복하고 국민적 합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할 법적 권위와 조직적 잠재력을 지닌 기구라 생각한다.”

지난 18일로 다시 자연인이 된 황인성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사무처장의 말이다. 2017년 6월 민주평통 사무처장에 임명된 뒤 지난 2년간의 경험을 갈무리한 회고다.

‘민주평통이 무슨’이라거나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힐난할 이들이 적지 않을 터. 하지만 지금 민주평통의 활약상이 그렇다는 주장이 아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잠재력”이 있다는 얘기다. 언젠가 대청소 때 없애버려야 할 ‘쓰레기’가 아니라, ‘아직 피지 않은 꽃’이라는 고언이다. 떠나는 이의 말이니 경청하는 게 좋겠다. 인터뷰는 퇴임 전날인 17일에 이뤄졌다.

민주평통은 헌법기관이다. “평화통일정책의 수립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는 헌법 92조2항이 근거다. ‘법적 권위’가 높다. 하지만 민주평통의 전신인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를 만든 이는 광주학살을 포함해 두 차례의 군사쿠데타로 대통령직을 찬탈한 전두환이다. 태생이 아주 불량하다. 헌법적 권위와 ‘저주받은 출생’의 극단적 모순 탓에, 1987년 6월 항쟁에 힘입은 9차 개헌 때 ‘민주평통’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존재감을 찾지 못했다. 오죽하면 탄핵당하기 전 박근혜씨가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헌법기관인 민주평통을 무시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따로 만들어 ‘통일대박론’을 퍼트리려 했을까.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찬밥’ 신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18일 임기 2년 마치고 자연인으로
원탁회의로 진보·보수 소통 노력
차기 자문위원 10% 국민공모로
여성 40%, 청년 30% 위촉 원칙도

평생 민주와 평화, 통일에 헌신
“다시 지역 시민사회로 돌아갈 것”

하지만 황 전 처장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끼리끼리의 소통’이 아닌 ‘진영 간’의 수평적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데 민주평통이 매우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고 지난 2년을 회고했다. 예컨대 ‘평화통일 원탁회의’. 대구(2018년 5월2일, 23개 시민사회단체+6개 대학, 280명)에서 시작해 광주(2018년 5월23일 27개 단체+4개 대학, 300명)와 대전(2018년 6월26일, 61개 단체+3개 대학, 400명)과 서울(2018년 12월4일, 167개 단체 700명) 등지를 돌며 진화하고 있다. 황 전 처장이 전한 한 참석자의 얘기는, 이 주목받지 못한 프로젝트의 잠재력을 웅변한다. “같은 지역에 오래도록 함께 살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마주 앉아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그냥 말이 안 되는 주장이나 한다고 치부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얘기를 해보니 동의는 안 되지만,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는 된다.” 자유한국당의 지도부가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대변인”이라 비난하고 ‘태극기부대’가 촛불시민을 “친북 빨갱이”라 비난하는 세상에서, “동의는 안 되지만 이해는 된다”는 시민의 경험은 소중하다. 당장은 아니지만 풍성한 결실에 불가결한 밭갈기여서다. 아직도 민주평통 자문위원직을 ‘명함용 직책’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려는 국내외 지역협의회 간부와 일반 자문위원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희망을 갖게 됐다”는 게 황 전 차장의 ‘경험담’이다.

황인성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황인성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
민주평통은 요즘 2년 임기의 19기 자문위원들을 위촉하느라 바쁘다. ‘19기 위촉 원칙과 절차’는, 18일로 자리에서 물러난 황 전 처장의 ‘작품’이다. 열쇳말은 “참여”다. 전체 자문위원(1만9000명)의 10%(1900명)를 ‘국민참여 공모제’로 위촉한다. 1981년 창설 이래 첫 시도다.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싶은 이는 ‘19살 이상 대한민국 국적자’이기만 하다면 ‘자문위원 활동계획서’를 써서 자신을 추천할 수 있다. 19기에선 전체 자문위원 가운데 40%를 여성으로, 30%는 청년으로 위촉한다. 18기의 29.6%와 20.4%에서 많이 늘어난 수치다. ‘보수적이고 나이 많은 남성 위주 조직’이라는 인식을 떨쳐내고 명실공히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의 뜻을 더 잘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변화 시도다. 다만 지역협의회장과 자문위원 추천·심의·임명 절차의 투명성을 확실하게 제도화하지 못한 점을 황 전 차장은 아쉬워했다. 19기를 이끌 이승환 새 민주평통 사무처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한국전쟁 끝 무렵인 1953년 1월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황 전 처장은 평생을 ‘민주’와 ‘평화’와 ‘통일’에 헌신해왔다.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결연히 맞섰고, 1987년 6월항쟁의 지휘부인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으로 전두환 군사독재를 끝내는 데 힘을 보탰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서러운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 애썼다. 참여정부에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내며 정부와 시민사회의 가교 노릇을 했다. “민주는 민중의 해방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라는 고 문익환 목사의 말씀을 여전히 화두로 부여잡고 산다. 황 전 처장은 “다시 지역 시민사회로 돌아가 늘 뜻을 함께해온 사람들과 의논해서 다음 일을 찾도록 하겠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사진 민주평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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