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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2 19:00 수정 : 2020.01.13 11:23

<조선중앙텔레비전>이 10일 방영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019년 행적을 담은 2시간20분 분량의 기록영화 ‘자주의 기치, 자력부강의 진로 따라 전진해온 승리의 해’에 소개된, 김 위원장이 노트북을 보며 군 보고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김계관 담화로 ‘트럼프 친서’에 답신…“다시 미국에 안 속아”
미국을 직접 비난하진 않아…‘협상’ 완전히 닫아걸진 않은 듯

‘전원회의’ 뒤 첫 대미담화 ‘요구사항’ 설명없이 ‘모호한 화법’
남쪽엔 여전히 ‘무시 겸 여지’…청와대 공식반응 내놓지 않아

<조선중앙텔레비전>이 10일 방영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019년 행적을 담은 2시간20분 분량의 기록영화 ‘자주의 기치, 자력부강의 진로 따라 전진해온 승리의 해’에 소개된, 김 위원장이 노트북을 보며 군 보고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은 “조미 사이에 다시 대화가 성립되자면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요구사항들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계관 고문은 11일 오후 <조선중앙통신>에 공개한 개인 명의 ‘담화’에서 “이제 다시 우리가 미국에 속히워(속아) 시간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김 고문의 담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생일 축하 친서와, 방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문재인 대통령한테 북쪽에 “잊지 말고 전해달라고 부탁한 내용”을 접수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 고문의 담화는 ‘트럼프 친서’에 대한 김 위원장의 ‘간접 답신’인 셈이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5차 전원회의(12월28~31일, 이하 ‘12월 전원회의’) 이후 북쪽 고위 인사의 첫 대미 담화다.

김 고문은 담화에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친분 관계가 나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했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해도 ‘개인’적인 감정이어야 할 뿐,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시는 분으로서 그런 사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국사를 논하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고는 “우리는 미국과 대화탁에서 1년 반이 넘게 속히우고(속고) 시간을 잃었다”며 “우리가 미국과 대화에 복귀할 수 있지 않겠나 기대감을 가지거나 그런 쪽으로 분위기를 만들어보려는 것은 멍청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친서’에 김 위원장이 ‘협상 복귀’로 화답하리라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다.

김 고문은 “인민이 겪는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일부 유엔 제재와 중핵적인 핵시설을 통채로 바꾸자고 제안했던 월남(베트남)에서와 같은 협상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2019년 2월27~28일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이 제안한 ‘영변 핵시설 완전·영구 폐기와 유엔 제재 11건 중 5건의 민수경제·인민생활 지장 항목 우선 해제 맞교환’ 협상안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는 일부 언론·전문가의 해석과 달리, 김 위원장이 추가 비핵화 조처와 일부 제재 완화·해제 협상을 배척한다는 뜻은 아니다. 예컨대 김 고문은 “우리 요구사항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으로 “조미 대화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북쪽의 요구사항은 이미 알려져 있다. 지난해 10월5일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 직후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회견을 자청해 “안전 위협, 발전 저해 모든 장애물 제거”를 제기했다. 김 위원장은 ‘12월 전원회의’에서 한-미 군사연습(+미국의 첨단무기 한국 반입)과 “제재 조처들”을 미국의 “제도 압살 야망”이라 예시했다.

미국이 한-미 군사연습 중단과 제재 완화·해제 관련한 분명하고 진전된 방침을 내놓는다면, 대화와 협상이 가능하다는 방침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만 김 고문은 “우리는 미국이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스톡홀름 협상에서 6·12 북-미 공동성명 4개항 이행 구상을 6시간에 걸쳐 설명하면서도 유독 한-미 군사연습 중단과 제재 완화·해제 문제는 아무런 언질을 하지 않은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미 국내 정치 상황을 염두에 둔 언급으로 읽힌다.

김 고문은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12월 전원회의’에서 내놓은 “자력갱생과 제재의 장기 대결”을 전제한 “경제를 기본전선으로 한 정면돌파전”에 일단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김 고문은 한반도 정세 진로와 관련해 담화의 열쇳말인 “요구사항”과 “우리의 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의도성이 짙은 모호한 화법으로 유의할 대목이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김계관 담화는 북쪽 요구의 최대치를 밝힌 것”이라며 “‘정면돌파전’이라는 ‘플랜 비(B)’ 가동 국면에 ‘플랜 에이(A)’ 협상 상황을 상정한 마지노선(최저선)을 밝힐 순 없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5일 평양시를 시작으로 며칠째 북한 각지에서 이어진 ‘12월 전원회의’ 방침 관철 “궐기대회” 사진·동영상에 ‘반미 구호’ 펼침막·구호판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은 사실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김 고문이 담화에서 미국을 직접 비난하지 않고 ‘협상의 문’도 완전히 닫아걸지 않은 대목과 잇닿아 있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현재로선 남·북·미 사이에 접점이 없는 만큼, 일부 제재 완화 내용이 담긴 결의안 초안을 유엔 안보리에 회람한 중국·러시아의 구상 등 ‘다른 경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남쪽의 ‘트럼프 당부’ 전달과 관련해 “남조선 당국은 조미 수뇌(정상)들 사이에 특별한 연락 통로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 같다”며, “설레발”이자 “주제넘은 일”이니 “자중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 빈정거렸다. 다만 남북관계 자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남북관계 관련 언급이 전혀 없던 ‘12월 전원회의’의 ‘무시 겸 여지 두기’ 기조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는 12일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는 신년사(7일) 기조에 바탕을 둔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협상 재개·진전 구상을 밝히리라 예상된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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