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대미 협상 실무 대표들한테서 보고를 받는 모습, 왼쪽 둘째 남성이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최근 “(대북) 외교·경제적 압력 행사 전념” 호소를 “망발”이라 비난하는 “외무성 신임 대미협상국장 담화”(담화)를 30일 발표했다.
북한 외무성 신임 대미협상국장은 이날 오후 <조선중앙통신>으로 공개된 담화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을 겨냥해 “미국은 때없이 주절거리며 우리를 건드리지 말았으면 한다”며 “건드리면 다친다”고 말했다.
‘담화’에서 주목할 대목은 북한 특유의 거친 대미 비난이 아니라, 담화 발표 주체다. ‘외무성 신임 대미협상국장’은 지금껏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주요 매체에서 한번도 거론된 사실이 없는 직책이다. 요컨대 북한 외무성에 미국과 협상을 주된 임무로 하는 국장 자리를 새로 만들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런 사정 탓에 이번 담화가 겉으로 드러난 거친 대미 비난 내용과 별개로, ‘북한식 대화 의지’를 내비친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외무성 신임 대미협상국장’이라는 직책이, 2019년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 신설됐던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어떤 관계인지도 주목 대상이다.
담화는 “지난 25일 폼페(이)오는 전인류의 생명을 엄중히 위협하는 신형코로나비루스(코로나19) 전파 방지를 논의하는 7개국 외무상 화상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생뚱같이 대조선 제재 압박을 고취했다”며 “자기 대통령이 좋은 협력관계를 맺자고 하는 나라를 향해 악담을 퍼부으며 대통령의 의사를 깔아뭉개고 있으니 대체 미국의 진짜 집권자가 누구인지 헛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이는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25일(현지시각)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화상회의를 한 뒤 워싱턴 국무부청사에서 별도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의 불법적 핵·탄도 미사일 개발에 대응해 외교적, 경제적 압력을 행사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고 밝힌 사실을 겨냥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 발언이, 북한에 코로나19 방역 협력 의사를 밝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친서와 상충하며 “조미 수뇌들 사이의 친분관계가 아무리 훌륭하고 굳건해도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확인해준다는 게 담화의 주장이다. 앞서 지난 2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한테 친서를 보내온 사실을 공개하며 “좋은 판단이고 옳은 행동”이라 “응당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우호적인 반응을 담은 담화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고는 신임 대미협상 국장의 담화는 “우리는 미국이 오랜 기간 우리 인민에게 들씌운 고통을 그대로 공포와 불안으로 되돌려갚아주기 위한 우리의 계획사업들에 더 큰 열의를 가지게 되었다”며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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