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호텔에서 2차 정상회담을 마치고 헤어지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7일 밤(현지시각) ‘승리 선언’을 한 지 사흘이 지나도록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주요 매체는 논평은 물론 단순 사실 보도도 10일까지 내놓지 않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개 활동 보도도 20일째 없다.
북한 매체의 ’침묵’은 전례에 비춰 이례적이지는 않다. 북쪽 매체는 이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도 ‘승리 확정’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서야 간략하게 보도하는 관행을 이어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승리 땐 ‘당선 확정’ 이틀 만에,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땐 ‘당선 확정’ 사흘 만에 관련 소식을 처음 전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때는 ‘당선 확정’ 이틀 만에 첫 보도를 내놨는데, 이름은 거론하지 않은 채 ‘새 행정부’라고만 전했다.
다만 이번엔 북쪽 매체의 ’침묵’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한편에서 나온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 만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소송전에 나선 상황을 의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 인정’ 등 상황이 공식 정리된 뒤에야 북쪽의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분석의 배경이다.
○ 2019년 11월14일 ‘조선중앙통신사 논평’
바이든 = “늙다리미치광이” “미친 개”
○ 2017년 9월22일 ‘국무위원회 위원장 성명’
트럼프 = “늙다리미치광이” “겁먹은 개”
더군다나 북쪽은 선거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폭군” “독재자”라 비난한 바이든 당선자한테 좋지 않은 감정을 숨기지 않아 왔다. 예컨대 2019년 11월14일 ‘조선중앙통신사 논평’은 바이든 당선자한테 “집권욕에 환장이 된 늙다리미치광이” “모리간상배” “미친개” “치매말기증상” 따위 막말을 퍼부었다.
하지만 북쪽의 이런 거친 막말은 2018년 정상회담 이전엔 트럼프 대통령한테도 쏟아냈던 터라, 앞으로 김 위원장이 바이든 당선자한테 적대적 태도를 드러내리라는 방증으로 삼기는 어렵다. 예컨대 2017년 9월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하자, 김 위원장이 ‘국방위원장 성명’(2017년 9월22일)으로 맹비난하며 맞대응한 사실이 있다. 김 위원장은 전례없는 개인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늙다리미치광이” “불망나니, 깡패” “겁먹은 개” 따위 막말을 쏟아냈다. 기분 나쁠 땐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젊은’ 김정은 위원장한테는 “늙다리미치광이”인 셈이다.
비난 주체와 비난의 공식성 정도를 놓고 볼 때, 북쪽의 바이든 비난은 예전의 트럼프를 향한 비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한테 애초 ‘늙다리미치광이’던 트럼프 대통령이 요즘은 ‘각하’라 불리듯이, ‘늙다리미치광이’라 불린 바이든 당선자의 새로운 호칭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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