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사관 “글레이저 부차관보 한국에 요청”…정부는 부인
대니얼 글레이저 미국 재무부 ‘테러자금 및 금융범죄’ 담당 부차관보는 지난 23일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북한의 불법활동을 포함한 세계적인 금융위협에 대해 관련 기관에 경고하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을 설명하고, 한국도 비슷한 조처를 취할 것을 요청했다”고 24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밝혔다. 그러나 글레이저 부차관보 일행을 만난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 관계자들은 “그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이날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글레이저 부차관보는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대응체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한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 주범과 그들을 돕는 지원망을 재정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더욱 힘써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보도자료를 보면, 글레이저 부차관보는 “실질적 조처를 신속하게 취함으로써, 미국이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지목한 (마카오 소재)방코델타아시아(BDA)와 같은 금융기관들이 북한의 불법활동과 기타 범죄행위에 용이한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사관은 보도자료에서 “북한 정부의 불법 금융활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글레이저 차관보 일행은 앞서 마카오·홍콩 방문을 마친 뒤에도 이날 보도자료와 비슷한 맥락에서 해당국 정부의 테러자금 차단 조처를 평가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현지 공관 명의로 내놓은 바 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이날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연 내외신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쪽의 협조요청이 무엇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미국 쪽은 23일 외교부와 만남에서 그런 (협조)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공식 부인했다. 반 장관은 “우리 정부는 이미 국제규범에 따라 돈세탁, 불법금융 등 초국가적 범죄행위와 관련한 모든 국제협약에 가입했고, 필요한 조처를 취하고 있다”며 “현 단계에서 정부가 추가로 취할 조처는 없다”고 강조했다.
재경부도 “미국 쪽에서 구체적 조처를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부인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주한 미대사관의 이날 보도자료의 내용은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차원에서의 협조 요청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2004년 2월 서명 비준한 ‘테러자금 조달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의 후속조처로 이를 이행할 ‘테러자금조달억제법안’(가칭)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른 시일 안에 국회에 제출해 공청회 등 입법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법안에는 테러자금 조달의 사전 방지 및 조달 관여자에 대한 사후 제재, 테러자금 조달행위에 따른 수익 금지와 관련 혐의가 있는 거래가 있을 경우 보고를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 담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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