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도 부근 동해 수로 탐사계획을 계기로 우리 정부가 그 기조를 바꾸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 바 `조용한 외교'의 실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8일 "조용한 외교기조를 계속 가져갈 것이냐를 결정할 시점에 이른 것 같다"고 말해 우리의 외교원칙 중 하나인 `조용한 외교'에 대한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 `조용한 외교' 뭔가 = 민감한 외교문제에 대해 말그대로 `물밑에서 조용하게'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조용한 외교'가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외교사안을 협상을 통해 물밑에서 처리한다는 것은 외교관들에 있어서는 기본으로 통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굳이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까지 상대국을 압박할 경우 당장에는 외교적 성과를 가져올 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민감한 외교사안의 경우에 `조용한 외교'가 적용되어 왔다.
독도와 탈북자 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독도 문제의 경우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등 우리가 일본보다 우위에 있는 문제로 굳이 일본의 억지에 일일이 대응해 불필요한 분쟁지역화 인상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강경대응을 자제하는 `조용한 외교'가 필요했다.
탈북자 문제의 경우, 2001년 6월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했던 재중 탈북자 장길수군 가족 7명의 한국행 과정에서 중국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면서 남북관계가 악화된 점을 들어 조용한 외교 기조를 유지하게 됐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특수관계인 북중관계를 감안해 중국을 곤란하게 하지 않게 하고 탈북자의 한국행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독도 `조용한 외교' 어떻게 해 왔나 =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마다우리 정부는 단호하기는 하지만 유감 표명 그 이상의 조치는 가급적 취하지 않았다.
국민 감정상 노골적인 공세적 외교는 여론 악화로 이어져 대일 강경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고 일본 역시 이에 대응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줄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게다가 국제사회에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인식시켜 결국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져가려는 일본 정부의 속셈이 명백히 읽히는 마당에 이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조용한 외교는 적어도 독도 문제에 있어서는 `이겨야 본전'이라는 판단 때문에 취해진 우리측 입장이었다.
실제로 작년 초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이 독도를 방문하려 하자 외교부는 치안총수의 독도 방문은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며 이를 적극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일본의 이번 수로 탐사계획이 독도와 뗄 수 없는 사안인데다 정부 차원에서 자국 교과서에 독도를 자국 땅이라고 명기하라고 요청한 사실이 공개되는 등 일본 정부의 행동이 도를 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조용한 외교→공세적 외교'로 바뀔까 = 이번 노 대통령의 언급으로 지금까지 유지됐던 독도 관련 `조용한 외교'가 어떻게 바뀔 지도 관심이다.
노 대통령이 비록 외교 기조를 변화시킬 것임을 시사하기는 했지만 이는 `조용한 외교' 원칙은 유지하되 일본의 도발 단계에 따라 그에 맞는 대비책을 구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즉 특정 외교사안에 대한 `조용한 외교'가 `공세적 외교'로 그 근본까지 바뀔 지는 아직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19일 "대통령의 언급을 조용한 외교 기조를 완전히 바꾸겠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까지 해왔던 것 처럼 조용함만 가지고는 좀 곤란하지 않느냐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특히 `조용한 외교' 기조의 변화는 이번 노 대통령의 언급 이전에 이미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작년 초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주한일본대사의 서울 한복판에서의 독도영유권 주장 파동과 시마네(島根)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 교과서왜곡 등이 이어지면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차원에서 대일(對日) 독트린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시 발표는 독도문제를 포함한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내 퇴행적 언행을 방치할 경우 양국 관계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한일관계 기조를 바꾼 것으로 인식됐다.
정부는 이후 일반인들의 독도 입도를 허용하는 조치를 내놓기도 했고 보류됐던 허 전 청장의 독도방문도 이뤄졌다.
다만 노 대통령이 이번에 `조용한 외교기조'라는 명확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은 `분쟁지역'으로 국제사회에 인식되더라도 분명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됨과 동시에 일본 정부에 대한 고강도 `경고'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일본의 실제 행동에 따라 단계적으로 대응하면 될 것"이라며 "일본 측량선이 우리측 EEZ에 진입하면 단호히 대처해야겠지만 나포 등의 대응을 한다면 일본의 의도에 말려들 가능성이 높다"고 신중함을 주문했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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