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아시아외교 성과 노려 적극적
정부, 신사참배 자제 등 ‘성의’ 기대
정부, 신사참배 자제 등 ‘성의’ 기대
지난 26일 아베 신조 정권의 출범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이 관계개선을 위해 정상회담을 열 것이라는 전망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두 나라 언론은 11월18~19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해왔다. 정부 관계자들도 이런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29일 전화통화 내용을 보면, 두 나라의 관계개선 속도는 이런 예상보다 훨씬 빠른 편이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전화통화 내용을 전하면서, ‘아펙을 계기로’ 라는 수식어 없이 “적절한 시기에 만나…정확한 일정은 외교경로를 통해 협의키로”라고 밝혔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상호 방문을 통한 양자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일본 방문보다는 아베 총리의 한국 방문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아펙 전이 될지 뒤가 될지는 앞으로 상황 전개 및 한-일 협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쪽에선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분위기다. 지금이 정상회담 재개의 적기라고 판단하는 일본은 아베 총리가 10월중 한국과 중국을 방문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매우 적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베 총리로선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 외교에서 조기에 성과를 올리는 것이 새 정부 출범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지름길이다.
아베 정권의 출범을 계기로 한 관계개선 필요성에는 한-일 양국이 모두 공감하는 모습이지만, 실제 정상회담을 가능케 할 분위기를 마련하는 문제는 여전히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거듭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 때처럼 한-일 정상이 어렵사리 만났는데, 돌아서자마자 얼굴을 붉히는 사태가 재연돼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적어도 두 분야, 곧 역사인식 문제와 대북 정책 쪽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어야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정상회담 합의가 의례적인지, 협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지는지’라는 질문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둘 다”라고 모호하게 답한 데는 이런 사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일본은 최대 걸림돌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해답’을 내놓지 않고 있어, 전망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중은 참배 자제를 분명히 밝히는 등 일본의 ‘성의있는 자세’ 표명이 필요하다는 쪽이지만, 일본은 아베 총리가 참배를 공언하지 않는 선에서 양해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대다수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경험이 있는 일본의 새 각료 가운데 누구라도 불쑥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망언’을 한다면, 정상회담 추진 분위기에 재를 뿌릴 수 있다. 또 아베 총리가 직접 ‘납북문제 대책본부장’을 맡는 등 대북 강경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정상회담 성사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도쿄의 한 외교 소식통은 “한국 정부는 새 일본 지도부가 어떤 메시지를 보내오는지 지켜보면서 판단한다는 방침이지만, 아직 일본 쪽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제안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일단 29일 중·참 양원 본회의에서 아베 총리가 소신표명 연설을 통해 자신의 국정운영 방침을 어떻게 밝힐지를 주시하고 있다.
이제훈 기자, 도쿄/박중언 특파원 noma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