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오른쪽)가 15일 필리핀 세부에서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마친 뒤 열린 ‘세부선언문’ 서명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가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한·중·일 등 동아시아 16개국 정상들은 세부선언문에서 에너지 문제에 공동 대처하기로 합의했다. 세부/연합뉴스
북핵 해법 한·중과 입장달라 불이익 우려
‘일본인 납치문제’ 공동발표문 명기 설전도
‘일본인 납치문제’ 공동발표문 명기 설전도
지난 14일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한·중과 일본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기류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함께 제안한 한·중·일 정상회담 정례화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거부했다고 정부 고위관계자가 전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5일 “노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북한 핵 문제 등 주요 현안들을 조율하는 최고위급 창구로 한·중·일 정상회담을 정례화하자고 제안했지만 아베 총리가 최종 성사 단계에서 이를 거부해 무산됐다”고 말했다. 세 나라는 결국 장·차관급의 한·중·일 ‘고위급 외교협의체’를 만든다는 선에서 의견을 조정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6자회담과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연계하는 입장을 고수해온 아베 총리가 북핵 문제에서 공동 보조를 취해온 한·중 정상과의 회담을 정례화할 경우, 자국의 이익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 일본은 이번 한·중·일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부터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정상들의 공동 언론발표문에 명기하자고 요구해, 한국·중국과 긴장 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의 고위 관계자는 “아베 총리의 지시를 받은 일본 실무협상단은 ‘일본인 납치 문제는 중대 사안’이라며 정상회담 공동 언론발표문에 이를 명시하자고 요구했고, 우리는 ‘6자회담과 일본인 납치는 별개의 문제’라고 맞섰다. 이 때문에 3국 정상회담 시작 10분 전까지도 공동발표문에 대한 최종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상회담에서도 노 대통령과 아베 총리 사이에 이 문제로 날카로운 신경전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한·일 두 나라는 결국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중재로 ‘국제 사회에서 우려하고 있는 인도적 사안을 다루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표현을 공동 언론발표문에 포함시키는 쪽으로 합의를 이뤘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14일 밤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주최한, ‘아세안+3’에 참석한 16개국 정상들의 만찬에 불참한 데엔 감기에 따른 피로 누적과 함께 아베 총리의 태도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감기 기운이 있는데다 한국과 중국, 일본 정상이 한자리에 앉게 돼 있는 점을 고려해,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에게 양해를 구한 뒤 불참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도 건배사만 한 뒤 일찍 만찬장을 떠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세부/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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