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 ‘일본해’ 단독표기 지지
세계 각국지도 동해 병기율 28%밖에 안돼
내년 IHO 총회서 한국 주장 관철될지 의문
세계 각국지도 동해 병기율 28%밖에 안돼
내년 IHO 총회서 한국 주장 관철될지 의문
미국과 영국이 ‘동해’ 명칭 문제를 다루는 국제수로기구 ‘해양경계’ 실무그룹에 바다 이름을 ‘일본해’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동해 표기를 둘러싼 한국의 외교 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 경과 유엔 산하 국제수로기구(IHO)에서 발간하는 <해양경계> 책자는 세계 각국 지도에 바다 이름을 표기할 때 일종의 기준 노릇을 한다. 1929년 발간된 이 책자 초판은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했고, 1937년과 1953년 나온 2판과 3판도 이를 유지했다. 이후론 판갈이가 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1991년 유엔 가입을 계기로 1992년부터 유엔지명표준화 회의와 국제수로기구 등에 참여해 동해 병기를 주장하고 있다.
국제수로기구 총회는 5년마다 한 번씩 열린다. 2002년과 2007년 총회에선 남북한의 병기 요구와 일본의 단독 표기 방침이 맞부딪치면서 동해 표기 문제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2002년엔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동해 부분은 비워두고 백지로 가자는 절충안이 나오기도 했다. 국제수로기구는 2012년 19차 총회를 앞두고 2009년 6월 2년 기한의 전문가 실무그룹을 구성해 이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내도록 했다. 80개 회원국 중 27개국 전문가들이 실무그룹에 참여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2년이 지나도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현재 추가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 현황 실무그룹에선 27개 참여국 전문가들에게 동해 표기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도록 했다. 남북한은 병기를, 일본과 미국, 영국 등은 일본해 단독 표기를 주장했다. 미국은 ‘한 개 지명에 한 개 명칭만 쓴다’는 내부 원칙에 따라 일본해 단독표기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다수국이 쓰는 명칭을 따르고, 병기에 따른 혼선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사 분야에 강한 영향력을 지닌 미국과 영국이 일본해 단독 표기를 지지함에 따라 2012년 총회에서 병기 주장이 관철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실무그룹에선 단독 표기보다는 병기나 중립적인 국가가 더 많다”고 했지만, 총회에서도 이런 구도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정부 한쪽에선 2012년 총회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않고 다음 회기로 넘기는 게 유리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1992년부터 세계 각국 지도에도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도록 꾸준히 노력해와 2000년 2.8%에 그쳤던 병기율이 지금은 28.07%까지 올라왔다”며 “이게 더 늘어나면 힘이 모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 등을 적어도 중립적 태도로 견인하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다.
■ 왜 동해? 바다의 명칭은 해당 지역의 왼쪽에 위치하는 대륙명을 따르는 게 일반적 원칙이다. 동해는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 있다. 19세기 이전까지 나온 고지도에선 동해를 한국해, 조선해, 동양해로 부른 경우가 일본해로 부른 경우보다 많았다. 그럼에도 <해양경계>에 일본해로 단독 표기된 것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사정이 결정적이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동해 명칭과 관련해 “한국과 러시아, 일본 등 3개 나라에 둘러싸인 해역인 동해를 특정한 국가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해 역시 ‘한반도의 동쪽’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평화의 바다’ 등 중립적인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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