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한·일 외교당국의 국장급 협의가 최근 열린 것은 특기할 만하다. 아베 신조 총리의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는 이미 해결된 사안”이라며 외교 협의조차 거부하던 기존 태도에서 한발 물러선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과를 기대하기엔 여전히 한-일 간 인식차가 커 보인다. 일본이 협의엔 응했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사실 이번 협의 자체가 당사자인 한국과 일본의 의지로 이뤄진 것 같지 않다. 지난달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들일 명분이 필요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베 총리의 팔을 비틀어 이뤄진 혐의가 짙다. 별로 뜻도 없는 이가 억지 춘향으로 나와 앉았으니, 섣불리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실 한-일 관계가 쉬웠던 적은 별로 없었다. 한-일 관계는 1965년 한일협정 회담 때부터 논란이었다. 야당과 학생들은 “굴욕 회담” “구걸 외교”라며 거리로 뛰쳐나갔고, 정부는 격렬한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계엄령과 위수령까지 동원해야 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위안부 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 독도 영유권 문제 등으로 늘 시끄러웠고 갈등을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배를 벗어난 나라가 우리만은 아니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우리처럼 과거 식민 지배국과 격렬하게 대립하는 신생국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지난해 가을 기자교환 프로그램으로 말레이시아를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 일행을 안내하던 현지 공무원에게 한-일 관계를 이야기하다 “말레이시아와 영국은 어떠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가 “식민지배는 이미 과거 아니냐”라며 쿨하게 대꾸하던 모습에 조금 놀란 적이 있다. 공무원의 입조심일 수 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와 영국이 특별히 다툰다는 얘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인도는 18세기 중엽부터 따져도 200년 남짓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인도와 영국이 특별히 불편한 관계라는 얘기도 못 들어봤다.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1961년 인도를 방문할 때 ‘식민지배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로 곤욕을 치렀다지만, 일왕의 한국 방문을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과는 달라 보인다.
한-일 간에 위안부나 독도 문제 같은 뜨거운 현안이 있다는 건 이들 나라와 분명 구별된다. 이들 현안이 끊임없이 갈등을 폭발시키는 활화산 구실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작동해온 한-일 간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이 밑바닥에서 갈등을 더 격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나보다 별로 나을 것 없던 이웃이 어느 날 벼락출세하더니 무시하고 괴롭힌다고 생각해 보자. 그 열패감이나 모멸감 같은 상처가 어찌 쉽게 아물겠는가.
그래도 한-일 관계가 1965년 관계 정상화 이후 지금처럼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높아진 우리의 자긍심이나 위상도 한몫을 하는 것 아닐까 싶다. 일본에 대한 우리 감정이 어디 어제오늘 일이었는가. 그러나 두 나라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감정 표출을 억누르던 심리적 제약도 엷어진 것 같다. 과거와 달리 한-일 관계 악화를 감당할 만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반면 일본은 이런 미묘한 변화에 여유를 잃고 조바심을 내면서 혐한론이 더욱 힘을 얻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일 국장급 협의는 다음달 속개된다. 사실 예정된 수순에 가깝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준비가 안 돼 있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시간 낭비이고 상처만 덧낼 수 있다. 오히려 필요한 건 냉각기일지 모른다. 지금처럼 현해탄 한쪽에서 한마디 하면 다른 쪽에서 맞대응하고 그래서 감정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쉽진 않겠지만 서로 좀 무심해져야 시간도 약이 된다.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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