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표 민주당 의원(왼쪽부터),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미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28일 출국한다. 문 대통령의 첫 정상외교다. 북핵을 비롯한 현안은 산처럼 쌓여 있다.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한겨레>는 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와 국회를 대표하는 외교·안보 전문가로 꼽히는 김종대(정의당)·홍익표(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조언을 구했다.
문 교수와 두 의원은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 핵 동결 땐 한·미 연합훈련 축소’ 등을 제안했다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린 바 있다. 북핵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남북관계와 한-미 동맹을 주제로 1시간20분가량 이어진 좌담은 지난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지난 방미 일정을 소개해달라.
문정인(이하 문) 동아시아재단과 우드로윌슨센터가 5년째 해마다 해온 한-미 동맹에 관한 학술회의다. 문재인 정부를 워싱턴에 소개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야당에선 “문 교수가 국민세금으로 한-미 관계에 이간질을 하고 왔다”고 비난하는데, 한-미 관계 이간질을 한 것도 나랏돈을 쓴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특보는 사무실도, 활동비도 없다. 동아시아재단 예산으로 다녀왔다.
-미국 쪽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게 뭐였나.
김종대(이하 김) 미국에선 ‘사드를 선의로 배치해줬는데 한국이 중국의 눈치를 보며 뭉그적거린다. 한국이 배신했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팽배한 데에 경악했다. 누구도 가서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홍익표(이하 홍) 미국 쪽에서 개성공단 재개 가능성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어떻게 조율할지 등 남북의 교류·협력 관련 문제를 많이 물었다. 또 의외로 한-중 관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사드 배치가 외교적 문제로 전환됐다고 보는 시각이 보수적 인사들에게서 강하게 드러났다.
-이번에 “사드 같은 문제로 깨질 동맹이면 그건 동맹도 아니다”라는 발언이 입길에 올랐는데.
문 동맹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도구인데, 동맹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됐다. 한-미 동맹이라는 건 우리의 생명과 번영도 담보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는 동맹이 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미국 전문가들과 얘기할 때는 어땠나.
문 미국의 보수 강경파들은 동맹을 신성불가침한 것처럼 보고, 동맹을 위해서는 한·미가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반면 동맹이라는 것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국가간의 협의를 하는 것을 말하며 서로 다른 국익이 있다면 그걸 조정해나가는 과정이 동맹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많다.
홍 너무 당연한 얘기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한-미 동맹은 중국을 견제하며 아시아 및 북한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는 등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다.
문 한국에서는 한-미 동맹을 미국이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시혜적 동맹’이라고 보는데, 엄격한 의미에서 ‘상호 호혜적 동맹’이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억지라는 이득을 얻는 반면, 미국은 대외 전략에 따라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략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
김 미국에서 자꾸 사드에 대해 ‘지난 정권과의 약속’이라고 하는데, 지난 정부에서 약속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트럼프 대통령이 깨겠다고 한다. 전시작전권 환수도 약속됐던 건데 깨진 적이 있다.
문 한국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고 한국 대통령이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비대칭적 인식이 문제다.
홍 한-미 동맹을 상징하는 말이 ‘함께 갑시다’(we go together)다. 거기에 ‘왜’(why)와 ‘어디로’(where)가 없다. 왜 가는지, 어디로 갈지 얘기해야 한다. 한-미 간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을 따라가야 되는 게 우리의 국익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럼 미국을 따라서 우리가 파리기후협정을 파기해야 하는 게 맞나? 한-미 동맹은 이견과 차이를 훌륭하게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동결하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는 발언도 논란이 됐다.
문 지난해 11월 미국 외교협회(CFR)가 주도해 샘 넌 전 상원의원과 마이크 멀린 전 합참의장이 공동보고서를 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동결하면 미국과 한국은 합동군사훈련을 동결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제안이 나왔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도,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보수적 안보전문가인 브루스 베넷도 ‘규모 축소’(scaling down)는 가능하다고 했다.
홍 훈련 규모 축소는 사실 ‘정상화’로도 표현할 수 있다. 한·미 연합훈련이 비정상화된 건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다. 훈련 규모도 커지고 전략자산도 동원되기 시작했다. 특히 2013년 3월 ‘플레이 북’이라는 대규모 군사훈련 때 북핵 위협이 고조되면서, 이에 상응해 미국도 군사훈련의 규모와 동원되는 무기 체계를 강화했다. 이제는 2010년 이전으로 돌려 정상화하자는 것이다.
김 북한이 핵·미사일로 협박할 때 이런 전략자산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군사적으로는 맞다. 군사력만으로 북핵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이렇게 가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군사적인 행동은 조정 가능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국내 일부에서는 그건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라는 것이다.
-북-미 대화와 별개로 새 정부에서 남북 대화를 추진하는 문제도 입길에 올랐다.
문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를 꼭 동시에 진행할 필요는 없다. 북에 억류됐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석방과 관련해서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년 가까이 북쪽과 비밀 접촉을 해왔다. 그것도 대화다. 미국의 국익에 맞는 그런 대화를 비공식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왜 미국 동의를 받고 북한과 대화해야 하느냐?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과 대화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에 저촉되지 않고, 우리 입장에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도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지금 워싱턴은 북-미 대화가 상당히 어려운 분위기다. 웜비어가 혼수상태로 돌아와 숨졌고, 북한이 지속적으로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면서 미 의회나 행정부, 일반 여론의 대북 인식이 너무 악화됐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 정부가 보다 주도적으로 남북 대화를 하면서 상황의 반전을 모색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게, 이번 미국 방문 때 느낀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드 문제로 넘어가자.
김 나는 사드 배치를 ‘과속 사고’라고 표현하는데, 지금 사드는 전략자산도 아니게 됐다. 경북 성주골프장에 배치할 때 주변에 보안 조치 없이 허허벌판 산꼭대기에 알루미늄 패드를 깔아놓고 마치 전시하듯 배치했다.
온 동네가 다 봤다. 북한이 공격하기도 좋다. 사드는 전략자산으로서 그 효용을 까먹은 상태다.
홍 사드 환경영향평가의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온다고 해도 배치의 철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환경영향평가는 성주에 배치하는 것이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를 보는 것이다. 또 사드 환경영향평가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문제다. 한-미 동맹도 법에 의한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배치가 앞당겨진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고, 이후 청와대는 ‘정치적 이유 때문으로 본다’고 했다. 그렇다면 환경적인 문제는 정치적 이유를 앞세운 부산물로 발생한 것이다. 원래 환경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환경영향평가는 이 문제를 제대로 정상화하고 절차적 합리성을 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이것이 소위 그 정치적 문제를 해소하는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이 제일 궁금한 것은 사드가 환경에 영향이 없다면 배치는 유지되는 것이냐는 점이다. 청와대는 미국에 그런 메시지를 줬다.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은 한-미 동맹의 합의도 초월하는 다른 정치적 이유 때문에 벌어진 참극이라는 성격 규정이 중요하다. 그에 따라서 정당성 자체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문 사드 문제는 국회에서 논의가 본격화되면 보다 본질적인 문제점들이 제기가 될 것이다. 사드가 우리 안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에 있어서 편법은 없었는가 등 공론화가 필요하
다. 법률적 하자가 없는지도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과 이로 인한 민생 경제의 파탄도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
미 의회를 비롯해 워싱턴에는 ‘우리 무기를 우리 돈으로 우리가 배치하고 운용하면서 주한미군과 그 시설을 보호하면서 한국도 도와주니까 우리의 일방적인 시혜인데 왜 한국에서는 이것을 갖고 왈가왈부하느냐’고 하는 시각이 꽤 있다. 그런데 홍 의원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 가져오는 국내의 정치적 파장, 동북아의 지정학적 파장, 경제적 파장에 대한 이해는 하나도 없다.
홍 미국에서는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받는 경제적 불이익이 얼마나 큰지를 말하면 깜짝 놀란다. 나는 동맹이라면 역지사지, 서로 입장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상회담을 앞둔 문 대통령에게 조언할 게 있다면?
문 이번 정상회담의 공통분모는 ‘성공’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이번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하지만 너무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해서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당당하게 문재인 대통령이 평소대로 하면 무난하게 성공적으로 할 것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는 한-미 동맹을 어떻게 강화하느냐와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공동 보조를 취할 것인지, 또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를 만드는 데 한·미가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해서 나가느냐가 정상회담의 가장 큰 의제가 될 것이다. 대통령께서 우리가 보다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그에 대한 동의를 받아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정상회담은
성공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갈등과 대립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대화와 협상의 지평을 열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람직한 게 없다고 본다.
김 우리가 지혜롭게 이견을 드러낼 건 드러내면서 다름을 확인하고 ‘구동존이’를 추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도 될 것 같다. 트럼프도 결국은 정치인으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이 있고, 우리는 우리의 관점과 이익이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당하셔라. 우리는 동맹국의 대통령을 만나는 기본적 예의와 당당함의 균형을 잘 맞춰서 우리 국가의 이익을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그게 ‘촛불정신’이라고 생각한다.
홍 미국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정권이 바뀌었는데 어떻게 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트럼프에 대해 갖는 불안감만큼 미국도 그런 걸 갖고 있다. 그런 불확실성을 이번에 해소한다는 정도가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북정책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반드시 짚어야 한다. 대북정책에 있어서 한국의 주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좀 담대하게 이 정상회담을 봐야 할 것 같다.
진행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정리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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