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6일 주요20개국 정상회의 계기에 베를린에서 열린 첫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0~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중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지난해 2월 박근혜 정부가 한-미 간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협의 사실을 발표한 뒤 급속도로 냉각됐던 양국 관계가 1년8개월 만에 바닥을 치고 회복 수순에 들어섰다. 한-중이 ‘사드 갈등’을 봉합하고 관계를 정상화해 나가기로 합의한 데 따른 첫 조처가 향후 두 정상이 양국을 오가며 정상외교를 펼치는 완전한 관계 복원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31일 오전 춘추관 브리핑에서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양국간 협의 결과 내용에 따라 아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 정상은 한-중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남 차장은 “(이는 양국이)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한 합의 이행의 첫 단계 조치”라고 설명했다. 양국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문 대통령과 리커창 총리의 회담도 추진하고 있다.
같은 시각 한국과 중국 외교부는 각각 누리집에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공개했다. 양국은 발표문에서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발전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며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하게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두 나라의 발목을 잡아온 사드 문제와 관련해선 중국의 우려와 한국의 입장을 인식하고, 향후 군사당국 간 채널을 통해 중국 쪽이 우려하는 문제에 대해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사드와 관련해선 양측 간 가진 입장을 있는 대로 표명하고, 그 순간 봉인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발표문에서 한국 정부는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는 그 본래 배치 목적에 따라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 것으로 중국의 전략적 안보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중국 정부는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를 반대한다”고 재천명하고, “한국 측이 관련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하기를” 희망했다. 두 나라 모두 사드 배치가 사실상 완료된 현 상황에 기반해 양국의 입장차를 재확인하면서도 관계 개선을 위한 명분을 쌓은 셈이다.
전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밝힌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미국의 엠디 체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관련 입장을 다시 설명했다”는 형식으로 발표문에 담겼고, 중국 정부는 이 3가지 문제에 대한 “입장과 우려를 천명”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지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아주 잘된 합의”라며 “사드 문제를 군사통로를 통해서 장기적으로 소통하는 것으로 정리한 자체가 한-중 관계 전반에서 사드 문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통제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양국은 발표문에서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고, 모든 외교적 수단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데도 합의했다. 또 이를 위해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양국 정부가 북핵 문제에서 협력을 통한 공동행동의 폭을 넓히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앞서 북핵 해법으로 ‘쌍중단’(북 핵·미사일 활동-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북미 평화체제 병행)을 제시한 중국이 ‘사드 갈등 봉합’을 토대로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와 협력 강화를 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이날 중국 베이징에서 양국이 문재인 정부 들어 첫 6자회담 수석대표 간 협의가 열렸다. 외교부는 이날 밤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의 협의를 전하며 “(양국이) 북한의 추가 도발 억제 및 긴장 완화 등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북한의 도발 부재를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면서 평창올림픽을 ‘평화의 올림픽’으로 만들기 위해 한-중 양국이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북핵 대화 재개 방안 마련을 위한 양국 간 긴밀한 협의 지속과 한국 정부의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이 실질적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중국이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이날 발표로 양국이 관계 정상화의 궤도에는 올라섰지만, 완전한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양국 정상 간 정식 양자회담 성사와 두 정상이 상호 방문하며 현안을 긴밀히 협의하는 ‘셔틀외교’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열흘 앞으로 다가온 베트남 한-중 정상회담이 양국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첫 계기다. 청와대의 설명을 보면 두 정상은 이 자리에서 사드 문제는 거론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양국의 조속한 관계 정상화 의지를 확인하고 북핵 문제에 대한 협력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 간 투자 확대 등 경제협력도 의제에 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금한령’ 등 사드 보복과 관련해서는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가 없어 다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베트남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방중 정상회담을 공식화하고, 내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에 시 주석을 초청하는 방식으로 한-중 관계의 완전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의 ‘연내 방중’ 합의가 발표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편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사드 문제를 벗어나 중-한 관계 발전의 장애를 없애는 것은 양국의 공통된 소망이며 쌍방의 공동 이익에 부합된다”며 “우리는 쌍방이 함께 노력해 중-한 관계가 이른 시일 안에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돌아오도록 추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화 대변인은 “중국의 사드 문제 입장은 명확하고 일관됐으며 변화가 없다”고 선을 긋고 △미국 엠디 체계 불가입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능 △사드 추가 불배치 등 한국이 제시한 ‘약속’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김지은 노지원 기자,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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