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모델’은 이른바 ‘선 핵폐기-후 보상’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북핵 해법으로도 거론됐으나, 2011년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살해되면서 ‘선 핵폐기-후 정권교체’ 모델로 각인 됐다.
2003년 12월19일, 카다피가 이끌던 리비아는 핵무기를 비롯한 모든 대량살상무기와 장거리미사일 프로그램의 폐기와 더불어 국제기구의 사찰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을 통해 2003년 초 미국에 핵 포기 의사를 전한 뒤 미국과 리비아가 비밀협상을 한 결과였다. 리비아는 1단계 조치로 2004년 1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하고, 2단계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사찰을 허용하는 한편 스커드 미사일 등 핵·미사일 장비를 미국으로 이송했다. 미국은 보상조치로 2004년 4월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6월 리비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24년 만에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같은해 9월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공식해제됐다. 이어 대량살상무기 완전 폐기라는 3단계 조처가 이뤄지자, 미 국무부는 2005년 10월 리비아 내 핵 프로그램 활동의 중단을 발표했다. 미국은 이듬해 5월 연락사무소를 대사관으로 승격하고, 6월엔 리비아를 25년 만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해피엔딩’으로 보였던 ‘리비아 모델’은 카다피가 핵을 포기한 지 8년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2011년 ‘아랍의 봄’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방의 공습에 직면한 카다피는 결국 미국이 지원한 반군에 의해 살해됐다. 당시 서방의 리비아 공습에 대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란 바로 안전담보와 관계개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상대를 얼려넘겨 무장해제를 성사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