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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8 10:57 수정 : 2019.12.28 11:00

파올로 팔케티 파리1대학 국제법 교수

[토요판] 인터뷰
파올로 팔케티 교수

독일서 강제노역 당한 페리니
이탈리아 법원서 “배상” 판결받아
국제사법재판소가 독일 편 들었으나
‘국가면제’ 국제법 벽 깰 첫발 의미

파올로 팔케티 파리1대학 국제법 교수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이탈리아인 루이지 페리니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탈리아 대법원이 배상을 결정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겐 한줄기 빛과 같은 판결이다. 한 국가의 공권력 행사는 다른 국가의 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관습법인 ‘국가면제’의 거대한 산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페리니 사건에 관여한 파올로 팔케티 파리1대학 국제법 교수(변호사)는 최근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페리니 사건은 반인권, 반인도주의 범죄의 경우 국가면제 뒤에 숨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팔케티 교수는 이탈리아 마체라타대학에서 국제법 교수로 있다가 올해 9월 파리1대학으로 옮겼다.

페리니는 1944년 8월 독일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1945년 4월까지 독일 내 군수공장에서 강제노역을 했지만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했다. “독일은 이탈리아 점령 기간 동안 저지른 범죄에 대해 지속적으로 책임을 인정했고 보상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보상은 특정 범주의 피해자를 배제했어요. 페리니도 여기에 해당됐고,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팔케티 교수는 “페리니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이탈리아 법원 문을 두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1·2심은 패소했지만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강행규범(누구나 상식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보는 보편적 원칙)을 위반한 국가의 범죄행위에 대해 국가면제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으며, 이탈리아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했고 배상 판결도 내렸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중대한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제법을 발전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국가면제를 개선하려는 강력한 시도라고 생각해요. 이 사건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적어도 반인권, 반인도주의 범죄의 경우 국가면제 뒤에 숨을 수 없다는 거죠.”

하지만 독일은 이탈리아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다.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재판관 ‘12 대 3’의 의견으로 “이탈리아가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독일의 손을 들어줬다. “국제사법재판소가 국제법의 새로운 발전에 신중하다는 점에서, 결과가 놀라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독일에 대한 면제로 이탈리아 국민의 법적 구제가 배제될 것이라는 것을 국제사법재판소 재판부도 알고 있었어요. 이런 이유로 ‘페리니 사건은 양국의 추가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국제사법재판소는 지적했습니다.” 팔케티 교수는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라는 의미였는데, 양국 정부 모두 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했다.

페리니 사건은 절망의 끝에서 또다시 반전을 맞는다. 이탈리아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독일의 전쟁범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내용의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2014년 “중대한 인권침해에 국가면제를 적용하게 되면 피해자들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된다”며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페리니는 아직 배상을 받지 못했지만, 법적 정당성은 확보한 상태다.

팔케티 교수는 이탈리아와 한국의 상황이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도 일본의 책임을 묻기 위해 온갖 종류의 시도를 했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났고 마지막 수단으로 한국 법원을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헌법에 따라 피해자가 법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가 국가면제라는 국제법 규정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올 수 있습니다. 물론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런 견해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 법원이 어렵고 중요한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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