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훈(외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019년 5월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7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이뤄지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은 향후 북핵 협상의 대세를 사실상 결정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이목을 끈다. 이번 방한을 계기로 북·미가 대화의 물꼬를 트지 못한다면, 지금 같은 교착상황이 오는 11월 미 대선과 그 이후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방한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북-미 접촉이 이뤄질지 여부다. 외교부는 이번 방한에서 비건 부장관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과 회담한다고 비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을 뿐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앞서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1일 한·미·일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비건 부장관이 “7월 초 판문점에서 북한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국 정부가 말을 아낀다는 것은 북-미 접촉을 위한 남북 혹은 북-미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선희 북 외무성 제1부상도 4일 담화를 내 “더 긴말 할 것도 없다.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둘째는 비건 부장관이 던질 ‘메시지’의 내용이다. 최 제1부상은 대화를 일단 거절했지만, 비건 부장관이 가져온 메시지 내용에 따라 상황은 얼마든 변할 수 있다. 최선희 부상은 앞선 담화에서 “북-미 관계의 현 실태를 무시한 수뇌회담설이 여론화되고 있는 데 대하여 아연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북-미 상태의 현 실태”는 지난해 2월 말 하노이 ‘노 딜’과 그로 인해 북한이 미국에 대해 갖게 된 깊은 불신을 뜻한다. 최 부상의 말을 꺼꾸로 읽으면, 이런 불신을 씻어줄 미국의 제안이 있다면 접촉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제안은 하노이 ‘노 딜’의 원인이 됐던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한 양쪽의 입장 차이를 좁히는 미국의 ‘양보안’이다. 북한이 꾸준히 요구해온 ‘행동 대 행동’ 원칙을 미국이 원칙적으로 수용하는 파격적 양보안이 아니라면, 북한은 움직이려 들지 않을 것이다. 최선희 부상은 지난 담화에서 이를 “우리와 판을 새로 짤 용단을 내릴 의지”라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양보안을 내놓는다면, 북한도 나름 성의를 보여야 한다. 북이 하노이에서 고집한 대로 영변 핵시설과 2016년 이후 제재를 교환하는 안을 토대로 ‘스몰 딜’을 재시도 하면, 의미 있는 합의는 이뤄지기 힘들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에서 언급했듯,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패배를 각오해야 하는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합의가 이뤄지려면, 북한 역시 그동안 공언했던 영변 핵시설에서 추가된 ‘+α’(플러스 알파)를 꺼내놓을 수밖에 없다. 후보로는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혹은 말로만 무성했던 제2의 우라늄 농축시설의 폐기 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시설 공개는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어서, 북한이 대범한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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