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신임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취임 첫 기자회견에 나서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신임 일본 총리의 16일 취임을 계기로 정부가 ‘역대 최악’의 상태로 망가져 있는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스가 총리가 ‘아베 내각의 계승’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단 기간에 큰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문 대통령은 오늘 오후 스가 신임 총리 앞으로 축하 서한을 보내 취임을 축하하고 재임 기간에 한-일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나가자”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한발 더 나아가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할 뿐 아니라 지리적·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인 일본 정부와 언제든지 마주 앉아 대화하고 소통할 준비가 돼 있으며 일본 측의 적극적 호응을 기대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협력해 과거사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미래지향적이고 호혜적으로 실질 협력을 강화해나가고자 한다”는 뜻도 밝혔다. 한달 전 8·15 경축사에서 “협의의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며 대화 의사를 강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번 서한에선 “일본의 적극적 호응을 기대한다”는 과감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일본의 성의 있는 대응을 요청했다. 정부가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은 미-중 갈등이 극에 달해 있고, 북-미 핵 협상이 장기 교착에 빠진 상황에서 양국 관계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이 이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가 총리가 ‘아베 내각의 계승’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만큼 단 기간에 큰 변화를 기대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운 형편이다. 스가 총리 역시 관방장관 시절 양국 간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책임을 갖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해왔고, 5일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도 “일-한 청구권 협정은 일-한 관계의 기본”이라는 인식을 밝혔다. 일본 외교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이 유임된 것에서도 확인되듯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추진해온 외교 노선에 당장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자학사관의 극복’ 등 아베 전 총리가 집착하던 역사 수정주의 기조와는 거리를 두고 있어, 과거사 문제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으로 한-일 관계를 긴장 상태로 몰고 가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스가 총리는 2013년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끝까지 반대했지만 뜻을 관철하는 데 실패하자, 이병기 당시 주일 한국대사에게 직접 전화해 이 사실을 미리 전하기도 했다.
앞으로 한-일 관계의 흐름을 결정하게 될 변수는 올해 한국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의 ‘연내 개최’ 여부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지난달 22일,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방한 결과를 설명하며 “(한·중) 양측은 한-중-일 정상회의 연내 개최 필요성에 대해서도 협의했다”고 밝혔다. 일본이 이에 동의하고 코로나19가 안정적으로 관리되면, 문재인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스가 총리와 첫 대면 정상회담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회담이 열리면 양국 정상은 지난해 12월 확인한 대로 “대화를 통해 조기에 문제를 해결해가자”는 기본 입장을 재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일 외교 당국은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2018년 10월 대법 판결로 촉발된 양국 갈등을 풀기 위한 의미 있는 협의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양국 간 국장급 대면 협의 역시 지난 2월 이후 중단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정상이 직접 만나 문제의 조기 해결 필요성을 다시 확인하면, 교착 상태에 빠진 외교 협의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한-일의 입장 차가 너무 커 본격 협상이 시작된대도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길윤형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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