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국정감사를 위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를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이 23일 오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계획 철회하고 방사능 오염수에 대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이 27일로 예상됐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출 결정 시점을 국내외 반발 여론을 고려해 다음달 이후로 미뤘다. 한국은 주변 해양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대 사안인 만큼 일본에 ‘신중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지만, 자국 상황을 앞세운 일본이 조만간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여 가뜩이나 악화된 한-일 관계에 상당한 악영향이 예상된다.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은 23일 기자회견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해양방출 문제와 관련해 “27일 정부 방침을 정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연기에 대해 지역 어민 등 반대 여론이 생각보다 거세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가지야마 경산상은 “적절한 타이밍에 정부가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리겠다”고 덧붙여 결정 자체를 뒤집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앞서,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언제까지고 정부가 방침을 정하지 않고 뒤로 미룰 순 없다. 가급적 빨리 정부가 책임을 갖고 처분 방침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한국인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방침을 사실상 일방적으로 결정하자, 한국에선 중단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에 대한 일본 정부의 안전한 처리 대책 수립 촉구 결의안’을 내어 오염수에 대한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양방류를 계획하는 일본 정부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국제사회와 인접국가의 “동의 없는 방류 추진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도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해양방류는 역사상 최악의 해양오염이 될 것”이라며 규탄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문제는 일본의 결정을 뒤집을 ‘대응 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오염수’를 기준치 이하로 희석해 바다에 방출하는 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인정하는 처분법이다. 일본은 지금도 하루에 140t씩 발생하는 오염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핵종제거설비(ALPS)라는 장치를 통해 삼중수소(트리튬)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고 있다. 이렇게 처리된 오염수는 일단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에 설치된 1천t짜리 거대 탱크에 보관되는데 2022년 10월이면 오염수 저장 용량이 한계에 이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오염수를 500~600배 희석해 배출 기준치 이하로 낮춘 뒤 방출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해양방출을 정식 결정하면, 설비 건설, 기준 마련 등의 준비를 거쳐 2022년에 오염수를 바다에 처음 쏟아내게 된다.
일본 정부는 일단 자료 공개 등 한국 정부의 여러 요청엔 가급적 응한다는 입장이지만, 얼마나 성실한 자세로 한국의 요구에 응할지는 알 수 없다. 앞서 22일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는 투명한 정보 공개와 국제사회의 동의를 요구하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방사능에 극도로 민감한 한국 여론을 생각할 때 이번 사태가 한-일 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장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금지 범위를 넓히라는 요구가 쏟아질 수 있고, 지난해 같은 자발적 ‘불매운동’이 시작될 가능성도 높다. 이런 반발 분위기에 일본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간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 보복 조처 때와 같이 상호 보복전이 재발할 수도 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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