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정원장이 11일 오후 일본 방문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0일 한-일 우호관계의 새 지평을 연 1998년 ‘파트너십 선언’의 뒤를 잇는 또 다른 공동선언을 제안했지만, 일본에선 징용 피해자 배상 관련 기업 자산 ‘현금화’ 문제를 먼저 해결해달라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선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정상 간의 ‘획기적 타협’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11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박 원장이 전날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면담에서 1998년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김대중 대통령이 서명한 ‘일-한 공동선언’(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잇는 새 공동선언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본은 “징용공 문제가 있는 가운데 (공동선언을 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소극적 반응을 보이는 데 그쳤다. 이를 보여주듯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상대방의 발언이기 때문에 구체 내용을 깊게 언급하는 것은 삼가겠다. 새 공동선언 작성을 포함해 일-한 관계에 대한 구체적 제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은 전날엔 스가 총리가 “매우 엄혹한 상황에 있는 일-한 관계를 건전하게 되돌리기 위한 계기를 한국 쪽에서 만들어 줄 것을 다시 요구했다”는 사실만을 공개했다. 스가 총리가 언급한 관계 개선을 위한 ‘계기’는 현금화 절차의 중단인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한국에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등장에 맞춰 제2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시동을 걸려면, 내년 여름께 열리는 도쿄올림픽을 2018년 평창과 같은 ‘평화올림픽’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도 원칙적으로 긍정적 입장인 것으로 확인된다. 스가 총리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림픽 기간에 도쿄를 방문하면 회담하겠냐는 질문에 “가정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삼가겠지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 원장이 스가 총리에게 남·북·미·일 등 한반도 주변국 정상이 한데 모여 도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성공 개최하자는 의견을 전했을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는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과 정상회담을 통한 ‘톱다운’식 문제 해결을 시도 중이지만, 일본은 한국의 ‘선조처’를 요구하며 버티는 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실무 회담에선 일본의 입장이 너무 강경해 한국이 먼저 안을 내놓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래서 (정상회담 등을 통한) 톱다운 접근을 시도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12일 일본을 방문하는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도
최근 일본 언론에 “대법원 판결이 연결돼 있어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의 폭이 너무 좁지만, 해결에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경제 문제를 포함한 패키지로 해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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