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수급에 대한 한국 정부의 협조 요청에 ‘현 단계에서는 쉽지 않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정부가 백신의 조속한 확보를 위해 ‘한-미 백신 스와프’ 등 협력 방안을 두고 협의하는 중 나온 미국의 반응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미국도 금년 여름까지는 소위 집단면역을 꼭 성공을 해야 되겠다는 의지가 굉장히 강해서 그걸 위해서는 자기들도 사실은 백신이 그렇게 충족한 분량이 아니라는 설명을 했다”며 “그 이후(집단면역 형성)에는 우선적으로 (한국에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가 가능하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라는 일차적인 입장 표명은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이 올 여름 집단면역 형성을 목표로 백신 원료 및 관련 장비 수출을 통제하는 등 자국 중심의 백신 정책에 집중하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며, 한국이라고 해서 이 정책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정 장관은 박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자신이 제안한 ‘한-미 백신 파트너십에 기반한 한-미 백신 스와프 방안’을 검토했는지 묻자 “미측과도 협의했다”고 답했다. ‘한-미 백신 스와프’는 미 정부가 한국에 코로나19 백신 물량을 긴급 지원해주면 나중에 미국에 갚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 장관은 “한-미 간의 백신 협력은 다양한 단계에서 중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지금 미측하고 상당히 진지하게 협의를 하고 있고 케리 특사가 (한국에) 왔을 때도 집중적으로 협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월 중순 정상회담이 성과를 내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날 정부의 백신 외교 성과가 미진한 데는 미-중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모호한 입장을 취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박진 의원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빨리 깨야 백신을 포함한 대외 관계가 풀릴 수 있다”며 “쿼드(대중 견제를 위해 미국·일본·호주·인도가 구성한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고 백신 협력을 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이태규 의원도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대해서 전폭적으로 참여하고 호응하는 일본하고 여기에 미온적인 태도, 묵묵부답인 우리하고 과연 미국이 동등하게 대하겠느냐”고 짚었다.
이에 정 장관은 백신 협력은 “한-미 동맹 이슈하고는 관련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필요할 때 도와주는 친구가 정말 진정한 친구라는 표현이 있듯이 그러한 차원에서 얘기해야 된다”며 지난해 코로나19 발생 초기 당시 상황을 언급했다. 정 장관은 “미국이 우리에게 요청을 해서 진단키트와 마스크를 국내 수요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당량을 공수해줬다”며 “그러한 사실도 우리가 미국에 지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백신 협력이) 미-중 간 갈등이나, 쿼드 참여와 연관이 직접 없다고 본다”며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에서도 백신 문제는 정치·외교적 사안과는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도 했다. 정 장관은 “미국도 한국과의 협력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이런 합리적 요청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검토해주기를 저희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정 장관의 발언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또 있었다.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부의 백신 대응에 대한 의원들의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던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달리 정 장관은 정부의 초기 대응이 미흡함을 인정하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정 장관은 “백신 접종률이 세계 제일 꼴지 수준”이라는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저희도 상당히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 답변은 이후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타를 받았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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