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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끼리끼리’ 술을 마신 이유는?

등록 2016-06-29 10:39수정 2016-07-06 14:19

정치BAR_최재천의 정치를 읽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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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의 버릇>, ‘계파의 우상’을 보다

우리 국회는 상임위 중심주의라서 본회의가 자주 열리지는 않는다. 보통 두 달에 두 번 정도, 법안 처리를 목표로 열리곤 하는데 보통 100건 내외의 법안을 처리하다 보면 밤 12시 무렵이 된다. 회의가 거의 끝나 갈 때쯤이면 가까운 의원들끼리 끝나고 한잔하자는 약속들을 하곤 한다. 여의도에서 밤 12시 넘어서까지 문 여는 선술집 몇 개야 뻔하다. 거기다 19대 국회 시절엔 야당 의원들 단골집이야 더 뻔해서 그곳에 가면 같은 당 의원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주류-비주류 계파 갈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일로였는데 그럴수록 주류와 비주류 모두 각각 내부의 단결력은 공고해졌다. 주류, 비주류는 단골 술집도 달랐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다 보니, 당 내부 문제에 대해 사실을 바꿀 필요가 없고, 의견을 바꿀 필요가 없고, 행동을 바꿀 필요가 없는 사람들끼리의 편안한 술자리가 펼쳐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에 빠지기 쉬운 구조였다. 야당이 그러할 때 새누리당 또한 어디선가 친박과 비박이 각기 다른 테이블에서 확증편향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을 터였다.

‘로미오의 몬터규가와 줄리엣의 캐풀렛가의 불화’는 현대에 들어 더욱 심화된 느낌이다. 미국에선 1960년대만 하더라도 자녀가 자신과 지지 정당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꺼리는 미국인이 20명 중 한 명꼴이었다. 최근엔 민주당원의 경우 세 명 중 한 명이, 공화당원은 두 명 중 한 명이 ‘다른 정당 간 결혼’을 금기시한다.

<판단의 버릇>(마이클 J. 모부신 지음, 정준희 옮김, 사이)은 사람들이 진영과 계파의 논리에 빠져드는 과정을 실험 사례로 보여준다. 미국 에머리대학의 심리학자 드루 웨스턴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열성 당원들을 자기공명영상장치(MRI)에 눕게 한 다음 정치적 주장을 담은 슬라이드를 보여줬다. 여기엔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사람들 세 그룹의 주장이 담겨 있었는데 모두 눈에 띄는 자체 모순을 담고 있었다. 먼저 당원들에게 각 후보의 주장에서 모순점을 찾아내서 그 정도에 따라 점수를 매기게 했더니, 당원들은 상대 당 후보의 주장에는 모두 최고점을 줬다. 그러나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선 누가 봐도 뻔한 오류투성이인데도 최소한의 모순점밖에 찾아내지 못하거나 애써 이를 무시했다. 뇌의 움직임도 같았다. 당원들이 슬라이드 자료를 읽는 동안 이들의 뇌에서 의식 추론을 담당하는 부위를 스캔한 결과,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정보를 봤을 때는 이 부분의 회로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당 후보들의 주장을 봤을 때는 뇌가 긍정적인 감정들을 활성화시켰다. 뇌는 이미 믿고 있는 것을 강화시키는 ‘확증편향’의 도구였던 셈이다.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의 부통령 딕 체니는 호텔에 투숙하면 늘 똑같은 요구를 했다고 한다. 디카페인 커피 한 포트, 다이어트 스프라이트 캔 네 개, 그리고 모든 텔레비전은 <폭스뉴스>에 맞춰줄 것. 미국만이 아닐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보는 뉴스 채널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의원들이 보는 뉴스 채널이 다르다. 각기 선호하는 신문도 다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사실과 의견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새누리든 더민주든 당원들에게 상대 정당의 모순과 비리는 들보요, 자신이 속한 정당의 과오는 티끌처럼 보일 것이다.

일본의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1950년대 일본 신문 정치면을 두고 ‘정치’가 아니라 ‘정계’를 다룬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자기확증의 편향에만 빠지는 한, 한국에도 ‘정치’ 아닌 ‘정계’만이 있다. 정치적 계파라는 이름의 ‘정계’ 말이다.

최재천 전 의원은 이름난 독서광입니다. 현역 시절에도 한 달에 스무 권씩 읽을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풀어냅니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의 ‘낯선 정치’와 격주로 연재됩니다.
전 국회의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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