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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기로, 김영란법에 적응하거나 사라지거나

등록 2016-08-10 09:47수정 2016-08-10 14:28

정치BAR_최재천의 정치를 읽는 밤_‘혼자 밥먹지 마라’ 인맥의 의미를 새기다
헌법재판소가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에 외식업계는 일제히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특히 일부 고급 한정식집들은 식사 금액 상한선이 3만원인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장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29일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2016.7.29
헌법재판소가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에 외식업계는 일제히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특히 일부 고급 한정식집들은 식사 금액 상한선이 3만원인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장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29일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2016.7.29

미 하원 금융위원회는 월가 규제에 대한 입법 권한을 가진 상임위다.

우리나라 정무위원회가 그러하듯 인기 상임위이자 정치자금이 쏟아지는 곳. 새로 당선된 하원 의원들이 금융위에 배정되면 업계 로비스트들은 상임위 위원들을 분석한다. 한 로비스트가 <뉴욕 타임스> 기자에게 말했다. “신임 위원을 살피는 것은 메이저리그에서 1차 지명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투자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로비스트들은 수익을 기대하며 투자를 합니다.”

징검다리 재선으로 19대 국회에 들어갔더니 기자가 물었다. “17대 국회와 비교해서 뭐 변한 게 있던가요?” “에스엔에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된 것 같고, 특별히 눈에 띄는 한가지는 여의도에 대관 업무 관계자들의 출입이 엄청 늘었네요.”

대관 업무란 회사나 업계를 대표하여 국회나 행정부, 검찰 등지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전달하고 한편으론 우호적 인맥을 형성하는 업무를 통칭한다. 로비스트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다. 그때 담당했던 상임위 업무 중에 방송·통신 분야가 있었다. 단말기 제조사와 통신업체의 이해관계는 대부분 다르다. 주파수 배정을 놓고 지상파 방송과 이동통신사의 이해관계는 더더욱 다르다.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티브이 업계 간의 이해관계 또한 다르다. 각기 이해가 상충되는 업계에서 나온 대관 업무 관계자들의 의원실 출입이 잦았다.

이런 갈등의 현장이 여의도다.갈등을 회피할 수는 없다. 도망쳐선 안 된다. 더구나 여의도는 갈등 조정의 마지막 결전장이다. 식사야 거절하면 그만이다. 어느 정치인이 밥 한 끼가 욕심나서 부나방처럼 식사 자리에 쫓아가겠는가. 하지만 차 한잔도 대접하지 않고 매몰차게 의견서나 주고 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여기에는 행정부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행정부와 업계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이때 무조건 행정부 편을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 국회다. 견제와 균형은 입법부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면담을 까다롭게 굴면 어디선가 연고를 찾아 거절하기 힘들게 만든다. 출세’하더니 고등학교 동창이 찾아가도 만나주지도 않더라, 당선되더니 지역구민이 어쩌다 한번 찾아갔는데 ‘코빼기’도 비치지 않더라. 이런 순간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초상은 파탄난다. 그래서 코 꿰인 듯 민원이라는 이름의 이해관계자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여의도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대관 업무 관계자든 민원인이든 의원실 출입이 전적으로 자유로운 동네다. 그렇게 인연이 싹틀 수 있다. 인맥이라는 이름의 인연 말이다.

정치, 비즈니스, 외교 모두 헌법과 법률의 문제라기보단 관계의 문제다.사람 사이의 문제다.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 인맥을 구축하고 그 관계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복무시키는 일,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본성일 거다. 그 관계의 맥락 속에 ‘밥’이 있다. 그래서 인맥에 관한 어느 자기계발서의 제목은 아예 <혼자 밥먹지 마라>(Never Eat Alone, 키스 페라지·탈 라즈 지음, 이종선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그런데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의 취지를 왜곡해 “혼자서 밥 먹으라고? 혼자서 술 먹으라고?” 조소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 법의 취지를 모르는 이는 최소한 이 땅에는 없을 터. 공상과학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말을 빌리자면 “적응하거나 소멸하거나”(Adapt or Perish). 앞으로 정치는 김영란법에 적응하거나 아니면 소멸하거나 양자택일에 놓여 있다.

물론, 법률가로서 전직 정치인으로서 염려되는 몇가지가 있다. 김영란법은학연, 지연, 혈연, 근무연, 종교연으로 똘똘 뭉친 한국 사회 기득권의 고래를 잡아내야 한다. 그러나 법은 고래잡이용이 아니라 멸치 잡는 그물이다. 형사 사법의 과잉, 검찰권의 과잉으로 이어지는 것은 곤란하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어야 한다. 삼국지의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 해서는 안 된다. 정치나 관료의 재량이 극도로 축소되고 보신주의, 극단적 관료주의에 빠져들어서도 안 된다. 정치나 행정은 창조적이어야 하기에.

최재천 전 의원은 이름난 독서광입니다. 현역 시절에도 한 달에 스무 권씩 읽을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풀어냅니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의 ‘낯선 정치’와 격주로 연재됩니다.

전 국회의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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