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최재천의 정치를 읽는 밤_‘자본주의를 구하라’
새누리당은 전당대회를 치렀고, 더불어민주당은 주말(27일)이 전당대회다. 당 대표의 얼굴이 바뀌면 당의 비전도 바뀔까.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선 의회주의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의회가 약하면 정당이 약하다. 정당이 약하면 정당 대표의 리더십과 의제 설정 능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라는 일극 중심주의적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미래를 보여주고 대안을 제시하라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핵심 의제는 ‘청와대와의 관계’였다. 전당대회 이후의 여당발 의제도 여전히 그렇다. 더민주의 전당대회 의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차기 유력 대선 후보와의 관계’다. 전당대회 이후의 당내 논쟁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청와대, ‘다음’ 청와대라는 정치적 의제 말고는 어떠한 미래 비전과 의제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 한국 정치의 비애다.
얼마 전 미국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조세 정책을 발표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중산층의 세금을 감면하며, 부자증세를 감행하고, 부유세까지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 전에 버니 샌더스가 있었다. “(내가 과격하다고 하지만) 과격이란, 부자들에게 감세해준 정치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국가에서 새롭게 창출되는 소득의 대부분을 최상위 1%가 가져가는 상황이야말로 과격합니다. 또한 한 집안(월마트가)의 경제적 부가 하위 1억3천만명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사실, 이런 미국의 현실이 과격한 것입니다.”
한국 선거의 특징 중 하나는 총선에서는 회고적 투표, 그러니까 지난 정치에 대한 평가적 성격이 강한 반면 대선에서는 전망적 투표의 경향을 띤다는 점이다. 미래와 대안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투표 행태다. 미래와 대안은 명확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오늘은 극단적 불평등, 치명적 양극화의 시대다. 그렇다면 차기 대선을 예비하는 대안 야당의 전당대회는 누가 뽑히느냐의 사람 문제이기도 하지만 대안을 내놔야 한다.
‘친박 여당 대표’ 이정현도 샀다는 그 책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광복절 행사를 마치고 “수십년간 변함없이 종종 가는 제 휴식처이자 지적 에너지 충전소”라는 대형서점에 들렀다. 구입한 책 중 하나가 힐러리와 샌더스의 경제 스승이라는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상위 1%의 독주를 멈추게 하는 법>(Saving Capitalism, 안기순 옮김, 김영사)이었다.
라이시는 이렇게 말한다. “대안적 세력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상향 분배를 중단시키는 동시에 더욱 공정한 사전 분배 방법을 찾아 세금을 창출해내서 이전지출의 필요성을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현대 자본주의의 중심 조직인 대기업을 재구성해야 한다.”
법인세에 대해서는 두 가지 대안을 담았다. 하나는 2014년 캘리포니아주 의회에 제출된 법안인데 기업의 중간 근로자가 받는 급여를 기준으로 시이오(CEO)가 이보다 훨씬 더 많이 받으면 법인세를 올리고, 액수가 크게 차이가 안 나면 법인세를 내리자는 안이다. 물론 이 법안에 대해 캘리포니아주 상공회의소는 ‘일자리 살해 법안’(Job Killer)이라고 저항했다. 다른 하나는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의 제안인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비례해 근로자의 급여를 인상하는 고용주에게는 세금을 낮춰주고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세금을 인상하자는 안이다. 그냥 막연하게 법인세 인상, 부자감세 철회를 주장해온 정치권의 ‘방전’된 논법에 비하면 ‘지적 에너지를 충전’시켜줄 만한 제안들이다.
누구나 외쳐왔듯 불평등의 문제를 더이상 시장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부의 분배를 관료나 경제학자들에게만 맡겨서도 안 된다. “부의 분배라는 문제는 언제나 주관적이고 심리적이며,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고 갈등적인 면을 갖게 된다”(토마 피케티). 그렇다면 정치밖에 없다. 사회의 최종적이고 근본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기제는 정치이고, 그 정치적 대안을 준비하는 일이야말로 대안세력의 몫이다. 대선을 채 1년4개월도 남겨두지 않은 지금, 정권 탈환을 꿈꾼다는 대안정당의 전당대회라기엔 현재의 논쟁 수준은 낯뜨겁다.
최재천 전 의원은 이름난 독서광입니다. 현역 시절에도 한 달에 스무 권씩 읽을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풀어냅니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의 ‘낯선 정치’와 격주로 연재됩니다.
전 국회의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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