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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은 왜 싸울까

등록 2016-09-06 16:42수정 2016-09-06 17:00

정치BAR_최재천의 정치를 읽는 밤_‘정치철학’, 감정의 정치를 옹호하다
“2008년 12월 민주당 대표단이 국회의장실로 찾아오겠다고 했어요. 뭔가 짚이는 게 있었어요. 저도 야당 시절 의장 공관 점거 조장을 지냈거든요. 팔에 완장까지 차고. 야당 의원들이 의장실로 오는 건 의장실을 점거하겠다는 뜻이죠. 다음이 국회 본회의장, 마지막이 공관이고요.”(김형오 전 국회의장)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소리가 있다. 하나는 싸우지 마라, 둘은 도둑질하지 마라. 하지만 의원들은 또 싸운다. 선거 끝난 지 불과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국회선진화법이 제정된 이후 ‘날치기’, ‘의장실 점거’ 등은 이젠 화석화된 정치 용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1일 여소야대 국회를 상징하듯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실을 또 점거했다. 어제도 싸웠고, 오늘도 싸운다. 아마 내일도 싸울 것이다. 진짜 말 안 듣는다. 유권자를 하늘로 섬기겠다고? 애당초 믿는 시민들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잠시 돌이켜 생각해 보자. 왜 싸울까? 태생적으로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국회에 가는 걸까? 멀쩡하던 사람들도 왜 국회만 가면 싸움판을 벗어나지 못할까?

정치철학이 분석의 틀을 제공한다. 이들이 싸우는 건 ‘정치적 감정’ 때문이다. 사적 감정이 아니다. 정치학으로 풀자면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개개인에게 각인된 일종의 공적 감정이다. 갈등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조정 기제는 취약하다. 정치를 철저히 배격하면서 모든 갈등의 뿌리에는 정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정치만이 이 모든 갈등을 해결할 만능 열쇠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관성대로 사회의 모든 갈등은 여의도에서 총궐기한다. 정치인들은 갈등의 대리인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는 무절제한 감정의 과잉이다. 분노를 넘어 무분별한 혐오가 정치를 압도한다.

최근 감정이 정치철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른바 “감정의 시대가 온 것”이다. 곽준혁 교수(중국 중산대)가 <정치철학 1·2>(민음사)에서 ‘감정과 정치?감성적 판단은 바람직한가?’를 한 장에 걸쳐 다루었다. 곽 교수는 감정에 대한 정치철학적 논의가 심화되고 있는 것을 환영했다. 두가지 측면에 주목했다.

“첫째,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적 의지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정치적 저변을 확대하려는 노력. 둘째, 이성적 설득 조건을 강조하는 심의 민주주의에 대한 거센 반발과 감정을 배제한 정치도덕적 판단에 대한 회의.”

부연 설명하자면 이렇다. 감정을 배제한 도덕적·정치적 판단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판단에 이미 감정이 개입하는데 어떻게 무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감정의 긍정적 가치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또한 정치를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중립적이고 형식적인 제도로만 운용하는 데 대한 반발이다. 인간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 대한 회의도 있다.

그러면 이 분석 틀을 한국 정치에 견주어 보자. 불행하지만 한국 정치는 아직 합리적인 이성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근대 이전에 표류 중이다. 감성의 다양성은커녕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이고 폭력적이다. 정치적 감정과 사적 감정은 혼재된다. 배신이라는 도덕의 용어가 정치를 지배한다. 그런데도 정작 정치철학적 논쟁은 무시된다. 곽 교수는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보수와 진보의 잣대로 낙인부터 찍고 보는 풍토, 방법상의 차이조차 적대적 대립으로 몰아가는 태도, 정치적 해결은 애초에 부정하면서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민주주의로 해결하려는 모순이 우리의 정치력을 가려 버린다. 둘째, 지금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맹목적으로 권력을 추구하고 있다. (대통령) 권력만 잡으면 세상을 뒤집어 버릴 수 있다는 이상한 정치적 현실주의가 이제 미시적 삶의 공간까지 부패시키고 있다.”

정치적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더불어 사적 감정을 넘어선 정치적 감정이 재발견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치철학에 대한 공적 담론이 살아나야 한다.

최재천 전 의원은 이름난 독서광입니다. 현역 시절에도 한 달에 스무 권씩 읽을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풀어냅니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의 ‘낯선 정치’와 격주로 연재됩니다.
전 국회의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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