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최재천의 정치를 읽는 밤_‘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이건 국정감사가 아니라 ‘동네축구’다. 지역도 포지션도 없다. 관중·선수·감독·주심조차 분간할 수 없다. 온 나라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라는 공을 쫓아 좌충우돌한다.
국정감사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몇 가지 구조적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국회가 이미 상시 국회다. 거기다 상임위 중심주의도 사실상 사라졌다. 무려 1500명이 넘는 국회출입기자들도 이런 상황을 강화시킨다. 하루하루가 국정감사인 것이다. 반대의 측면엔 한국 사회의 관료주의화가 자리한다. 정치 리더십의 부재가 고전적 의미의 관료주의를 부채질하고, 관료들은 치졸한 정치화의 길을 선택한다. 대통령 선거 캠페인이 상시화된 것도 허약한 국감에 일조한다. 사시사철 일년 열두달이 대선 캠페인이다. 모든 정치 행위는 오로지 대선이라는 이름으로 해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진정성이라는 거짓 외투를 뒤집어쓰고 오히려 ‘현실정치’를 차단한다. 정치를 도덕의 영역으로 몰아넣는다. 반(反)정치다.
입시지옥, 주거대란, 자살률 1위…‘동네축구’ 국감이 외면하는 것들
헌법과 정치의 현실이 이렇게 뻔한데도 순박한 국회 보좌진들은 국정감사를 위해 한여름 땀 흘린다. 의제를 설정하고, 자료집을 발간하고, 질의문답서를 만들고, 매일 수십 건의 보도자료를 토해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온 나라의 관심은 오로지 미르와 K스포츠재단뿐이다. 그래서 다른 주제로 준비한 국감은 준비에 그칠 뿐이고, 정작 거론되는 의제는 정치적 ‘상황’이 결정한다. 정치 자체의, 언론 자체의, 시간 자체의 논리가 국감을 지배한다. 모든 것은 즉흥적이고 즉자적이다. 한국 사회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비전에 대한 논의는 소멸된다.
반복적으로 얘기하곤 한다. 한국의 현실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다, 학교는 여전히 시험지옥이다, 내 집 마련의 꿈조차 여태 해결하지 못한다, 결혼은커녕 연애도 할 수가 없다, 가장 불행한 노년의 삶을 살아간다, 10년이 넘도록 전세계 자살률 1위를 놓지 않는다. 질문은 계속된다. 과연 인간 공화국인가? 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정치와 권력은 오로지 인간의 존엄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일진대, 이러고도 나라라 할 수 있는가?
88살 덩샤오핑, 개혁을 찾아 떠난 여정
최근 조영남 교수의 역작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1, 2, 3>(민음사)이 출간됐다. ‘위대한 개혁가’와 ‘잔인한 독재자’의 두 얼굴을 가진 덩샤오핑은 1992년 1월17일 88살의 노구로 ‘남순’을 떠난다. 주위 사람들이 말렸다. “걱정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험을 하겠다. 모험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 그러곤 1월18일 첫번째 메시지. “우리의 지도자들은 마치 무엇인가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값어치 있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을 보면 온통 회의와 행사뿐이다. 우리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텔레비전 스타로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 (…)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덩샤오핑의 말은 25년이 지난 현재 한국에서도 울림을 갖는다. 이대로 가면 시민이 노예가 되고, 공화국이 식민지가 될 수도 있다. 슬프게도, 나는 비관론 쪽에 서겠다.
최재천 전 의원은 이름난 독서광입니다. 현역 시절에도 한 달에 스무 권씩 읽을 정도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를 풀어냅니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의 ‘낯선 정치’와 격주로 연재됩니다.
전 국회의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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