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대선주자들의 성소수자 인권의식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열린 대선 출마선언 행사에서 ‘성소수자’ 방송인인 홍석천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왼쪽 사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15년 6월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유엔헌장 채택 70주년 기념식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인 ‘하비밀크재단’으로부터 성소수자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메달을 받은 뒤 연설하고 있다.(오른쪽) 안희정 지사 페이스북 갈무리, 하비밀크재단 누리집
선거 때 되면 입 다물거나
동성애에 대한 태도 뒤집기 다반사 유엔서 성소수자 인권 옹호한
반기문의 대선 참여로 첫 ‘의제화’
정작 본인은 귀국 뒤 모호한 태도 안희정·이재명은 ‘차별금지법 찬성’
대부분 대선주자 명확한 답 꺼려
찬성 60%인 시민들 수준에도 미달 그러나 성소수자에 대한 반 전 총장의 명쾌한 입장은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후부터 애매하게 바뀌었다. 그는 지난 24일 기독교계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교계에서 절대 반대하는 동성연애를 지지한다는 유언비어가 많다”는 질문에 “오해할 만한 소지가 성소수자 차별 금지 얘기다. 제가 지지한다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의 인권과 인격이 차별받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발언을 듣고서 이용규 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그분들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치유의 대상이라고 말씀하시면 클리어(깨끗히 해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여기에 대해 반 전 총장은 따로 답변하지 않았다. 반 전 총장은 동성애와 관련해 자신이 ‘오해’를 받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이런 모습은 사실 한국 정치에서 여러 차례 반복됐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박영선·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성소수자 인권 변호에 적극적이었던 박 시장은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에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넣었다가 기독교계의 반대로 아예 인권헌장 자체를 채택하지 않았다. 2012년 성소수자 단체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적 조류에 발맞춰 언젠가 우리 사회에서도 동성애 성적 소수자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던 표창원 의원은 지난해 총선 직전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선 “성경에서 금지한 동성애가 이 사회에 확산되는 것에 반대한다.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게 아니라, 차별에 반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한 차별금지법 제정안에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던 박영선 의원 역시 지난해 2월29일 기독교계가 주최한 국회 기도회에 참석해 “오늘 이렇게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 관련 법 이거 저희 다 반대한다. 특히 동성애법, 이것은 자연의 섭리와 하느님의 섭리를 어긋나게 하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동성애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식의 발언에 감춰진 ‘이중성’을 지적한다. ‘이성애자를 지지한다’, ‘이성애자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은 것처럼, 성적 지향에 대해선 ‘지지한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태도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동성애는 존재의 영역이지 찬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 인권단체인 ‘친구사이’의 이종걸 사무국장은 “차별에는 반대하되 성소수자를 지지하진 않는다는 것은 동성애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도 ‘점잖게’ 쓰는 표현이다. 반 전 총장 재직 시절 유엔의 권고를 많이 인용했던 우리 입장에서는 그의 발언이 당혹스럽고 모욕적으로까지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 문제가 처음으로 정치쟁점화된 계기는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이다. 이 법안엔 ‘성별, 연령, 인종, 장애, 종교, 성적 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 처벌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 법안은 17·18·19대 국회에서 모두 발의됐음에도 통과하지 못했다. ‘성적 지향’이란 문구를 문제삼은 기독교계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 한국 정치에서 기독교계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통계청은 2015년 기준으로 자신의 종교를 ‘개신교’라고 답한 이들이 967만6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9.7%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불교 신자보다 200만명 이상 많은 숫자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동성애와 이슬람을 막아내자’는 구호를 전면에 내건 기독자유당이 62만6853표로 2.63%의 득표율을 기록해 비례대표 의석을 배출할 수 있는 3%에 육박했다. 이러한 기독교계의 정치적 압박으로 인해 반 전 총장을 포함해 대부분의 대선주자들이 동성애 인권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애매한 태도 유지하기’다. <한겨레>가 지난 27~31일 여야의 주요 대선주자들에게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입장을 물었더니, 대부분의 주자들은 ‘공론화’ ‘사회적 합의’를 전제조건으로 답변을 미뤘다. 심지어 미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 결정을 적극 환영했던 반 전 총장은 여러 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답을 내놓지 않았다. 2012년 대선 때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의 공개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던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5년 전엔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하고 동성커플의 사회적 의무와 권리에 대한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자고 밝혔지만 이번엔 오히려 후퇴했다. 이번 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전통적인 가정, 가족, 결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지지함, 그러나 혐오와 차별에는 반대함”이라는 짤막한 입장을 밝혔다. 직답을 피하면서 다분히 중도·보수층을 겨냥한 답변 내용이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공개 지지했던 김조광수 영화감독의 2013년 국내 최초 동성결혼식에 공식 초대됐지만 불참한 바 있다. 바른정당의 대선 후보인 남경필 경기지사와 유승민 의원은 “동성애를 차별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법으로 강제하는 것에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같은 입장을 드러냈다. 그나마 차별금지법에 대해 분명하게 입장을 밝힌 주자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다. 이 시장은 “차별금지법에 적극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할 문제”라고 한발 물러섰다. 안 지사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는 ‘충남도민 인권선언’을 2014년 10월에 발표했다. 지난 19일엔 한 인터넷 방송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성적인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논쟁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대다수 정치인들의 애매한 입장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긍정적인 시민들의 여론과도 동떨어져 있다. 차별금지법이 한창 논란이던 2013년 7월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전국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9.8%가 차별금지법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반대는 17.6%에 불과했다. 반 전 총장이 귀국한 지 3주가 다 돼가지만, 이번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인권 차원에서 보자면, 반 전 총장이 기여한 점이 있다.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에서 최소한 ‘당신의 입장을 물으니 확인해달라’의 수준으로까지 진화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질문받기도 싫고, 대답하기도 싫다’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러나 어떡하겠나. 받기 싫은 질문을 받는 게 정치인의 어쩔 수 없는 책무인걸.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꺼리는 성소수자 관련 질문의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게 분명하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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