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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들의 대선 도전 실패사…황교안은?

등록 2017-02-02 15:06수정 2017-02-02 16:08

정치BAR_황 권한대행의 ‘무모한 도전’ 성사될 것인가
대한민국 국무총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지만 행정부를 움직이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다. 권력의 최정점이 바로 눈앞에서 보이고, 언론 노출도 잦아 인지도는 쉽게 오른다. 그래서 역대 정권마다 총리는 ‘대선 예비군’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통령으로 선출된 총리는 한 명도 없다. 역대 정부 총리들의 대선 도전 실패사를 정리했다.

김영삼 정권의 이회창

1997년 7월,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제15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회창 당선자가 김영삼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hani.co.kr
1997년 7월,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제15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회창 당선자가 김영삼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hani.co.kr
김영삼 정권 시절 이회창은 개혁의 아이콘이었다. 서슬퍼런 전두환 독재정권에서 대법관으로 일하면서 국가보안법과 계엄법, 국가모독죄 등에서 적법 절차와 표현과 양심의 자유를 강조한 숱한 소수의견을 쏟아냈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를 꾸리면서 1993년 이회창을 초대 감사원장에 기용했고 그해 12월에는 총리로 ‘승진’시켰다. 그러나 ‘대쪽 총리’와 ‘카리스마 대통령’의 동거는 오래 가지 않았다. YS의 가신인 최형우 내무부 장관에게 호통을 치면서 총리의 헌법적 권한을 수행하려던 이회창은 1994년 4월, 대통령 직속으로 운영되던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직접 통할하려고 나서며 대통령과 충돌했다. 결국 그가 낸 사표를 대통령이 수리하는 방식으로 경질됐다. 총리 취임 125일 만의 일이었다.

대통령과의 대립은 이회창의 ‘대쪽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다. 1996년 15대 총선을 통해 그는 정치인으로 본격 데뷔한다. 대선 전초전 승리가 절실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나간 이회창을 신한국당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전격 영입한 것이다. 전국구 1번을 배정받고 전국을 누빈 이회창은 총선 승리의 전공까지 챙기게 된다. 그리고 대쪽 이미지에 따른 국민적 인기, 강력한 카리스마로 빠르게 당을 장악한다. 신한국당은 이한동·김덕룡 등 기존 정치인에다 이수성·이홍구 등 총리 출신 명망가들까지, 9룡으로 불리는 대선 예비 후보들이 즐비했지만 대세론을 형성한 이회창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회창은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 자리를 거머쥐고 1997년 15대 대선에 출마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두 아들이 체중 미달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지지율은 급전직하하기 시작했다. 이인제의 ‘경선 불복’ 출마까지 겹치면서 이회창은, DJP 연합으로 맞선 김대중 후보에게 39만표 차이(1.53%p)로 패배한다.

보수야당 한나라당의 유일 대안이었던 이회창은 5년 후인 2002년 16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혜성 같이 등장한 노무현 후보에게 또 패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을 문제삼으며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15.1% 득표로 3위에 그쳤다. 그의 대선 도전은 여기까지였다.

노무현 정권의 고건·이해찬

대선 불출마 선언 회견을 하려고 2007년 1월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을 찾은 고건 전 총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 기자회견장에 내리려다 지지자들이 앞을 막아서자 눈을 감은 채 착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대선 불출마 선언 회견을 하려고 2007년 1월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을 찾은 고건 전 총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 기자회견장에 내리려다 지지자들이 앞을 막아서자 눈을 감은 채 착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고건은 노무현 정권의 초대 총리로 기용됐다. 김영삼 정권 때에 이어 두번째 총리 자리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권의 ‘불안한’ 이미지를 보완하기 위해 개혁성보다는 안정감이 도드라지는 ‘행정의 달인’을 선택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탄핵을 맞이했다. 고건은 헌정 사상 최초로 부여된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했다. 총리 퇴임 뒤 2005년에는 지지율 30%대를 유지하며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인기가 떨어질수록 그의 주가는 올라갔고 고건은 대선 행보에 나서며 대북 포용정책을 비판하는 등 참여정부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승세는 오래가지 않고 2006년 지방선거 이후부터는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추격을 허용한다. 2006년 12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고건 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라는 직격탄을 얻어 맞기에 이른다. 고건은 결국 2개월 뒤 “기존 정당의 벽이 높아 현실정치의 한계를 느꼈다. 평범한 국민으로 지내고 싶다”며 중도 포기를 선언했다. 행정 달인의 정치 실패였다.

정동영, 이해찬, 손학규 대통합 민주신당 경선후보(왼쪽부터)가 2007년 10월9일 밤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에서 진행된 라디오 토론에 함께 출연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정동영, 이해찬, 손학규 대통합 민주신당 경선후보(왼쪽부터)가 2007년 10월9일 밤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에서 진행된 라디오 토론에 함께 출연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재야 출신 정치인 이해찬은 참여정부의 세번째 총리였다. 노무현의 정치적 동반자였던 이해찬은 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책임총리제를 현실에서 구현한 실세였다. 내각을 장악해 국무회의를 실질적으로 주재했고 국무위원 제청권도 행사했다. ‘일 잘하는 총리’라는 평가를 받은 그는 2007년 6월 대통합민주신당(열린우리당 후신)의 대통령 경선에 뛰어든다. 그의 대선 도전은 대다수의 예비후보들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참여정부의 정신을 잇겠다는 고육책이었다. 친노가 ‘폐족’으로 몰리던 상황에서 당내 조직도 미약했던 이해찬은 정동영·손학규에 이어 3위에 그친다.

이명박 정부의 정운찬

2010년 6월30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정운찬 국무총리가 세종시 수정압 부결과 관련해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0년 6월30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정운찬 국무총리가 세종시 수정압 부결과 관련해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9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2번째 총리로 기용했다.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정 총리는 2007년 대선 때 여권(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로도 거론됐던 인물로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는 카드이기도 했다. 정운찬은 취임하자마자 세종 행정복합도시 원안 수정에 착수했지만 박 전 대표는 신의를 앞세우며 세종시 원안 수정에 강하게 반대했다. 겉으로는 공약 이행을 둘러싼 논쟁이었지만 집권당의 차기 후보 자리를 놓고 붙은 결전이었다. 정운찬은 “국민 다수는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는데 국회의원 다수가 원안을 고수하는 것은 의원들이 자기가 속한 계파 보스의 입장을 앞세우기 때문”, “잘못된 약속도 지키려는 여자가 있는데 누군지 아세요”라는 식으로 박 전 대표를 겨냥했다. 그러나 정운찬은 박근혜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세종시 원안 수정에도 실패했다. “잘 해서 (대선주자로) 크면 된다”는 청와대의 바람과 달리 정운찬은 1년도 안돼 ‘꿈나무’ 정도의 단계에서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정운찬은 최근 “위기의 대한민국을 살릴 국민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나의 지식과 경험 등을 모두 바칠 각오가 돼 있다”며 대선 출마 채비를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황교안

2017년 1월26일 오후 서울역을 찾은 황교안 권한대행이 한 귀성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1월26일 오후 서울역을 찾은 황교안 권한대행이 한 귀성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외눈박이인데다 인사검증 기능까지 고장난 박근혜 정부는 총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난제였다. 황교안은 ‘총리난’에 시달린 박근혜 정부의 3번째 총리다. 전임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에 걸려 70일만에 단명했으니 황교안은 초대 총리인 정홍원과 정부 2인자로서 박근혜 정권의 책임을 절반씩 부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관운도 좋다. 냉전 사고에 빠진 ‘성골 공안검사’로 노무현 정권 시절에 검사장 승진에서 2번이나 탈락했으나 절치부심하며 버틴 끝에 이명박 정권에서 ‘구제’돼 고검장까지 지냈다. 변호사로 초야에 묻혀있던 그는 박근혜 정권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됐고 2015년 6월엔 총리 자리에 오른다. 이완구 낙마 뒤 두 달이나 공석으로 있던 자리를 채운 것. 적임자여서가 아니라 인사청문회를 한 차례 통과한 그가 그나마 리스크가 적다는 정무적 판단 덕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을 잘 보좌하는 ‘대독총리’에 그쳤던 그는 박 대통령 탄핵소추로 대통령 권한대행에까지 오른다.

행정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인지도 높아 언제나 ‘대선 예비군’
대통령 도전해 성공한 사례 없어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국가보안법 저서를 쓸 정도로 이른바 ‘국가관’도 투철하다. 평정심을 쉬이 잃지 않으며 목소리도 좋다. 보수 기득권 세력에게는 꽤 매력적인 존재인 셈이다. 헌정 사상 두번째 권한대행으로 대통령에 버금가는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것도 그에겐 생각지 못한 선물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예상보다 빨리 낙마하면서 ‘황교안 차출론’은 더욱 힘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반 전 총장 불출마 직후인 1일 저녁, jtbc의 의뢰로 리얼미터가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황 총리의 지지율은 12.1%로, 반 전 총장의 자리를 대신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www.nesdc.go.kr 참고) 지난해 연말 4%대에서 시작된 지지율이 빠른 속도로 뛰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그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30일 전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후임 인선을 위해서는 황 총리 본인이 사퇴 직전에 후임 총리를 지명해야 하는 볼썽사나운 상황이 연출된다. 대선 국면에서 국회가 인사청문회와 인준투표를 거치는 것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하는 총리 자리를 비워두는 것도 불안한 일이다. 차순위 국무위원인 경제부총리가 총리 자리를 승계하면 유일호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된다.

그의 출마 뒤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면, 대통령 탄핵소추 상황에서 직무대행인 총리가 대선에 출마하는 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나 대선 출마 여부를 놓고 “절대 그렇지 않다”(지난해 12월 국회 대정부질문)고 했다가 “지금은 그런 여러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다”(1월 새해 기자회견)라고 말을 바꿔버리니, 그가 ‘무모한 꿈’을 꾸고 있다는 의심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여권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는 있지만 그의 용꿈이 실현될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법무부 장관으로 시작해 총리로 발탁되기까지 박근혜 정부의 처음과 끝을 함께 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에 선거법 위반죄를 적용하지 말라고 검찰에 압력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해경의 과실치사죄 적용에 반대했고 이를 강행한 검사들을 좌천성 인사로 보복했다. 박근혜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보다 부채가 어머어마하다. ‘무모한 도전’을 고민하고 있는 그는 헌정 사상 최초의 총리 출신 직선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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