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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집권자 향한 강태공의 충언 “자신 위해 칼 쓰지 마라”

등록 2022-06-18 14:44수정 2022-06-19 09:34

[한겨레S] 이상수의 철학으로 바라보기
권력자의 자세

무왕을 도와 주나라 세웠던 여망
“술 삼가고, 함부로 칼 써선 안돼”
“거울 통해 스스로 모습 비춰봐야”
왕의 옷·거울·술잔 등에 잠언 새겨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회동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회동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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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선거가 끝난 뒤, 우리나라의 두 거대 정당에서 반성 움직임이 경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국민의힘은 혁신위원회를 설치했고,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우상호 체제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겉으로 ‘혁신’이라는 구호를 선점하기 위해 보여주기식 경쟁에 나서기보다,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당의 기풍과 체질을 바꿈으로써 국민들의 지지를 더 받기 위해서 경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옛사람들의 성찰과 반성을 참고하는 것도 오늘날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반성과 성찰을 강조한 대표적인 인물은 주나라 무왕을 도와 도탄에 빠진 상나라를 멸망시킨 여망(呂望)이다. 그를 흔히 ‘강태공’이라고도 부른다. 그는 옷, 거울, 술잔, 책상, 지팡이, 붓, 모자, 신발, 칼, 수레, 대문, 창문, 자물통, 벼루 등 무왕이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모든 기물들에다가 통치자들의 성찰과 반성을 촉구하는 문구를 새겨두었다. 그가 무왕에게 성찰과 반성을 촉구하기 위해 각 기물에 새겼던 잠언들은 <태공음모>(太公陰謀)라는 책에 실려 전해온다.

옷에는 의명, 거울엔 경명 새겨

그는 무왕의 옷에는 의명(衣銘)을 새겨 “누에치기 괴롭고 베 짜기 어려우니 새것만 찾고 헌것을 버리면 후에 반드시 추위에 떨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무왕의 거울에 새겨놓은 경명(鏡銘)에서는 “거울에 비춰 보면 자기 겉모습을 볼 수 있고 사람으로 비춰 보면(백성들의 평판에 귀 기울이면)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무왕의 술잔에 새겨놓은 상명(觴銘)에서는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닥쳐오는 법, 술에 빠져 그릇된 행동을 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리라”(樂極則悲,沈湎致非,社稷為危也)고 하였다. 무왕의 채찍에는 새기기를, “말을 몰아쳐선 안 되고 백성을 다그쳐선 안 되니, 말은 몰리면 넘어지고 백성은 몰리면 패망한다” 하였다. 무왕의 왕관에 새겨놓은 관명(冠銘)에서는,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덕의 허물로 남을 것”이라 하였고, 무왕의 신발에는 “다닐 때에는 요행을 바라지 말고, 반드시 바른 것을 생각하라”고 새겨놓았다. 무왕의 칼에다가는 “칼날이 예리하고 번뜩인다고 해도, 자기를 위하여 마구 휘두르지는 말라”(刀利磑磑, 無爲汝開)고 하였다.

강태공이 이처럼 무왕이 사용하는 일상용품 모든 곳에 이런 잠언을 새겨두어서 성찰과 반성을 촉구한 것은 성찰과 반성은 일상생활 모든 면에서 전면적으로 한순간도 잊음이 없이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준 것이다. 무왕은 힘들고 질리기도 했겠지만, 일상생활 모든 곳에서 성찰과 반성을 촉구한 강태공 덕분에 제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학정을 일삼던 상나라의 폭군 주 임금을 타도할 수 있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다양한 인사들이 모여 있는 정당의 체질과 기풍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일상생활 모든 면에서 전면적으로 이뤄져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경계와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은, 대표적인 인물은 남명 조식 선생이다. 남명 조식은 평생 벼슬에 나아갈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고 산림에서 ‘처사’로 살았다. 서른살 때 처가가 있는 김해 탄동으로 이사하여 산해정(山海亭)을 짓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마흔다섯살이 되던 해에 조식은 고향인 삼가현으로 돌아가 계부당과 뇌룡정을 짓고 살면서 후학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데 전념했다. ‘계부당’이란 당호에는 닭이 알을 품듯이 후학을 기르겠다는 뜻을 담았으며, ‘뇌룡정’이란 이름에는 우렛소리와 함께 용이 승천하듯 뛰어난 후학을 기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1561년에는 지리산 기슭의 진주 덕천동(오늘날의 산청군 시천면)에 ‘산천재’를 짓고 죽을 때까지 후학들과 강학을 하다 삶을 마쳤다. ‘산천재’라는 이름에도 또한 현명한 후학들을 길러내는 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조식은 ‘처사’로서 산림에서 학문에 전념하면서 오로지 후학 양성에 전념하겠다는 결심을 ‘산천재’라는 당호에 담은 것이다. 조식은 이 ‘산천재’에서 전국에서 그의 명성을 듣고 몰려오는 많은 인재들을 길러냈다. 김면 장군, 이기춘 선생 등 임진왜란과 경술국치 이후 일어난 의병장들 가운데는 남명 조식의 문인들이 적지 않았다.

조식은 늘 스스로를 일깨우기 위해 허리에 쇠방울을 차고 다니면서 이를 ‘성성자’(惺惺子, 깨우고 깨우는 것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깨어 있는 동안에도 자신을 일깨우기 위해 쇠방울을 차고 다닌 그는, 세상이 어둡다며 진실한 사람을 찾기 위해 대낮에도 등불을 켜 들고 다녔다는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연상시킨다.

민주당은 조식의 잠언 귀 기울이길

조식의 가죽 허리띠에는 “살아 있는 용을 포박해서 텅 빈 광야에 갈무리하라”(縛生龍, 藏漠冲)는 잠언을 새겨두었다. 그는 보검을 차고 다니기를 즐겼는데, 칼에는 “안을 밝히는 것은 경건함이요, 밖을 끊는 것은 올바름이다”(內明者敬, 外斷者義)라는 잠언을 새겨두었다. 조식이 남긴 잠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렛소리를 내려면 그뭄의 어둠 속에 잠겨 있어야 하며, 용이 모습을 드러내려면 깊은 바다 아래 잠겨 있어야 한다”(雷則晦冥, 龍則淵海) 어둠 속에 깊이 잠겨 있어, 아무런 영광도 빛남도 권력도 없는 깊은 바닷속과 같은 상태를 견뎌낼 수 있어야 세상을 감동시키고 놀라게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답답하고 무기력한 상태를 이겨낼 수 있어야 자신의 역량을 기를 수 있다는 말이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에는 “칼날이 예리하고 번뜩인다고 해도, 자기를 위하여 마구 휘두르지는 말라”고 한 강태공이 무왕의 칼에 새겨둔 잠언을, 야당으로서 깊은 바닷속과 같은 어둠을 견디면서 인재를 키워내고 역량을 길러야 할 더불어민주당에는 ‘우렛소리와 용’의 비유를 든 조식 선생의 잠언을 권하고 싶다.

이상수 | 연세대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 제자백가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겨레> 기자를 거쳐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등을 지냈다. 제자백가 사상과 철학을 강의하고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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