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으로 경찰국, 총경회의엔 ‘쿠데타’ 딱지 ‘시행령 쿠데타’ ‘행정 쿠데타’라는 비판 자초 국회에선 대우조선 문제 ‘돌격대장’ 면모 과시
정부조직법 자의적 해석한 ‘경찰 장악’ 시도 친위 쿠데타 다름없는 ‘사사오입 개헌’ 연상 이제 국회의 시간…입법권 수호 위해 나서야
[논썰] 돌격대장인가 스타장관인가, “쿠데타” 외치는 이상민. 한겨레TV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설치하는 문제로 온 나라가 극심한 논란과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정부는 26일 국무회의에서 경찰국 설치 근거를 담은 이를 대통령령 개정안을 통과시켜 버렸습니다. 경찰청 독립 전인 내무부 시절 치안본부 체계를 사실상 부활하는 내용입니다. 이대로라면 행안부 장관은 경찰국을 통해 경찰청장 이하 경찰관들의 인사를 관장할 뿐 아니라, 경찰 관련 정책도 최종 결정하게 됩니다. 인사가 만사인데 말이죠.
이 와중에 때아닌 ‘쿠데타’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쿠데타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선공을 날렸습니다.
“그쪽이야말로 쿠데타다!”
여기저기서 ‘반사’가 되돌아옵니다.
물론 은유, 메타포입니다. 하지만 실제 쿠데타 못지않게 긴박합니다. 전개 과정부터 짧게 살펴보죠.
이상민식 삼단논법
[논썰] 돌격대장인가 스타장관인가, “쿠데타” 외치는 이상민. 한겨레TV
전국 서장회의가 지난 23일 열렸습니다. 행안부 경찰국 설치와 지휘규칙 제정 등에 반발해 모인 거죠. 이틀 뒤인 25일 이상민 장관이 입을 엽니다. 다름 아닌 기자간담회 자리입니다. 자기 말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기 위한 목적이 있었겠죠.
“하나회가 12·12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바로 이러한 시작에서 비롯됐다. 무장할 수 있는 조직이 상부 지시에 위반해서 임의적으로 모여 정부 시책을 반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하나회의 12·12 쿠데타! ‘전두환 신군부’라는 불행하고 가혹한 역사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이 장관도 나이로만 치면 이른바 86세대입니다. 전두환 독재 치하에서 대학을 다닌 거죠. 그 혹독한 시절을 어디에서 어떻게 보냈기에, 전국 서장회의를 하나회의 12·12 쿠데타에 빗댔는지 궁금합니다. 12·12 쿠데타, 전두환 신군부는 이 장관에게 무엇일까요?
이 장관은 경찰의 ‘무장 가능성’까지 몇차례 언급합니다. 경찰은 무기를 들 수 있다 → 그런 경찰이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 → 쿠데타의 예비행위다. 이런 삼단논법이 되겠습니다. 그것도 판사 출신 장관의 머리에서 나온 겁니다.
[논썰] 돌격대장인가 스타장관인가, “쿠데타” 외치는 이상민. 한겨레TV
“정부야말로 행정 쿠데타다”
여러분 상식에 비춰보면 어떻습니까? 쿠데타 발언 이튿날에도 이 장관은 강경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경찰국을 신설하는 대통령령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날입니다. “치안을 책임지는 일부 서장들이 정부 시책에 반대되는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 기강이 흔들리는 것”이라고요. 윤석열 대통령도 “중대 국기문란”이라며 쐐기를 박고 나섰습니다.
반면,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된 류삼영 총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논썰] 돌격대장인가 스타장관인가, “쿠데타” 외치는 이상민. 한겨레TV
“이 사안은 시행령이 아닌 국회의 입법사항이다.”
“국회 입법권을 침해하고 법치국가가 아닌 시행령 국가를 만드는 심히 우려스러운 조처다.”
“경찰국 설치로 정치적 중립을 훼손해 헌법 질서를 교란하는 것이야말로 쿠데타적 행위다.”
우리나라 1호 헌법연구관이자 이명박 정부 시절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일갈합니다.
“로스쿨 초년생한테 물어봐도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행정 쿠데타’라는 표현을 씁니다.
“합법적 회의에 참석한 경찰들을 향해 말도 안 되는 ‘쿠데타’ 운운하지 말고, ‘행정 쿠데타’부터 바로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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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국가에 한 방 먹이다’
‘쿠데타’가 뭐기에, 양쪽이 서로에게 “쿠데타”라고 비난하는 걸까요? 쿠데타는 프랑스어입니다. ‘쿠’(coup)는 한 방, 타격, 충동, 돌발행동, 음모 같은 뜻이 있고, ‘에타’(Etat)는 국가, 즉 영어의 ‘스테이트’(State)에 해당합니다. 그대로 뜻을 풀어보면 쿠데타는 ‘국가에 한 방 먹이기’ ‘국가에 타격 가하기’인 셈이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쿠데타를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 지배 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 이동으로 이루어지며,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구별된다”고 뜻을 풉니다. 쿠데타와 혁명이 다르다는 건 상식이니까 넘어가기로 하죠.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무력’입니다. 이상민 장관도 경찰이 무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것을 들어 집단행동 자체가 쿠데타의 예비행위나 되는 듯이 비난을 했는데요.
서구에서는 경찰들이 파업 같은 집단행동을 하곤 합니다. 거기에 대고도 쿠데타 운운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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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시행령 쿠데타’ ‘행정 쿠데타’는 어떨까요. 이 역시 무력에 기반하지 않았기에 쿠데타의 개념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기습적인 정치활동은 모두 광의의 쿠데타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또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지배계급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가면서 경쟁자나 국민을 억압할 때 흔히 ‘쿠데타’라고 부릅니다.
‘친위 쿠데타’도 있다
쿠데타의 원조는 누구일까요?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입니다. 나폴레옹은 1799년 11월9일 의회를 공격하고 프랑스 제1공화국 제1통령에 올랐습니다.
우리 현대사에서는 5·16 쿠데타와 12·12 쿠데타가 있습니다. 고위 장성이 이끄는 군부세력이 국가에 일격을 가해 권력을 불법적으로 장악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12·12는 쿠데타지만 5·16은 혁명이라는 주장은 한갓 농담에 불과합니다.
나폴레옹 얘기를 더 해보죠. 정확히 말하면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흔히 나폴레옹 3세라고 부르는 그의 조카 얘기입니다. 1851년 12월12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나폴레옹 3세는 이날 의회를 강제해산하고 자신의 임기를 10년 연장한 다음, 이듬해에는 내처 황제에 등극합니다.
이런 경우를 ‘친위 쿠데타’라고 하죠. 이미 권력을 가진 자가 더 큰 권력을 가지려고 일으키는 쿠데타입니다.
무력을 쓰지 않아도 되는 친위 쿠데타
[논썰] 돌격대장인가 스타장관인가, “쿠데타” 외치는 이상민. 한겨레TV
친위 쿠데타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권력을 이용하는 것이기에 정권을 찬탈하는 쿠데타보다 쉬울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무기를 들어야만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도 그런 경우입니다. 1954년 11월27일 대한민국 2차 개헌 말입니다. 초대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없애기 위해 헌법에 부칙을 넣으려는 거였죠. 매수, 회유, 협박 같은 온갖 수단으로 국회의원들에게 개헌을 찬성하도록 몰아붙였습니다.
그런데, 투표 결과 재적 의원 203명 가운데 찬성 135명이 나왔습니다.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인 135.333명에서 0.333명이 모자라 부결이 선포됩니다. 그러나 이튿날인 28일 자유당이 긴급 의총을 소집해 가결을 선포합니다. 그때 논리가 ‘사사오입’, 즉 0.333은 0.5에 못 미치므로 버린다는 거였습니다. 이어서 29일, 법무부 장관 조용순이 이에 동조하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이를 위해 몇몇 관변학자의 주장까지 동원합니다.
작전 펼치듯 일사천리로
[논썰] 돌격대장인가 스타장관인가, “쿠데타” 외치는 이상민. 한겨레TV
아시다시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자신의 고등학교 대학교 과 후배인 이상민 장관을 통해 경찰국 신설을 집요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작전을 펼치듯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습니다. 이 장관이 직접 ‘경찰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를 꾸리고, 불과 네번의 회의 만에 ‘권고안’을 발표하게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달 사이 두차례 경찰을 향해 함포사격을 하죠. 첫번째가 지난달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 때고, 두번째가 이번 경찰서장 회의 직후였습니다.
“중대한 국가기강 문란이다.”
두번 다 사용한 표현도 똑같습니다.
이 장관의 논리는 어떻습니까.
“행안부 장관이 직접 지휘·감독하지 않으면 경찰은 아무런 지휘나 견제 기관 없이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에 이어서 제4의 경찰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991년 경찰청이 내무부에서 외청으로 분리돼나온 이후 더디지만 꾸준히 확대돼왔던 경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삼권 분립 외부에 있는 제4부가 됐다고 왜곡합니다.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인 ‘국가경찰위원회’의 위상과 권한, 역할을 강화하라는 전문가들의 요구는 들은 체도 하지 않습니다. 외려, 국가경찰위원회를 행안부 장관의 자문기구로 평가절하하고, 격하했습니다.
경찰이 내무부에 장악돼 있을 때, 우리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가 어떠했는지는 <논썰> 89화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편에서 상세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논썰] 돌격대장인가 스타장관인가, “쿠데타” 외치는 이상민. 한겨레TV
‘사사오입 개헌’ 때도 이랬다
윤석열 정부는 14만 경찰 조직의 근간을 바꾸는 일을 시행령만 고쳐서 처리했습니다. 정부조직법 34조 5항의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행안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는 조항을 근거로 듭니다.
여기서 ‘관장하기 위하여’라는 문구는 ‘관장하도록’이라는 의미이고, 따라서 치안을 ‘관장’하는 주체는 경찰청이다, 행안부 장관이 직접 치안을 관장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건 왜곡이다, 정히 경찰국을 설치하려거든 정부조직법부터 고쳐라, 안 그러면 위헌이라는 법률 전문가들 얘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습니다.
대신 윤 대통령 측근인 법제처장을 앞세워 “이번 직제 개정은 법적으로 적법한 것”이라고 우깁니다. 이상민 장관이 설치했던 ‘경찰제도 개선 자문위원회’ 참여 인사들도 거들 것입니다.
법무부 장관 조용순과 관변학자들이 ‘사사오입 개헌’은 적법하다고 했던 것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역사적인 친위 쿠데타의 플롯을 베낀 듯 빼닮았습니다.
윤 대통령이 말한 ‘스타 장관’은?
[논썰] 돌격대장인가 스타장관인가, “쿠데타” 외치는 이상민. 한겨레TV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스타 장관’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언론에 장관들만 보이고 대통령은 안 보인다는 얘기가 나와도 좋다. 장관들이 다 ‘스타’가 되길 바란다.”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라고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습니다.
지금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장관은 단연 이상민 장관입니다. 27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파업과 점거에 이르게 된 과정을 아느냐고 거듭 묻자, 이 장관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의원이) 말씀해보시죠, 계속 묻지 마시고.”
이탄희: 왜 유최안(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부지회장)씨가 배 안에 들어갔는지 아십니까?
이상민: 제가 알기로는 원청과 하청….
이탄희: (원청 노동자들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전치 12주 폭력 피해서 있을 곳 찾아 다니다 배 안으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유조선 밑바닥에 눈에 보이는 가장 작은 구조물에 기어들어간 거예요.
이상민: 자세한 사실관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탄희: 그런 것도 모르시면서 불법이다 경고한다 이 말만 앵무새처럼 불법이라고 하는 겁니까?
이상민: 그 자체가 불법이 아니면 뭐겠어요. 불법은 불법이죠. 다만 그 경위에 정상 참작 할 사유가 있느냐 없느냐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이탄희: 이 모든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 말도 안 하세요?
이상민: 아니 모든 행위에는 원인이 있겠죠.
이탄희: 왜 그 모든 과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씀도 없으십니까?
이상민: 그 과정은 제 담당이 아니라….
[논썰] 돌격대장인가 스타장관인가, “쿠데타” 외치는 이상민. 한겨레TV
입만 열면 ‘법치’니 ‘불법’이니 되뇌는 이 장관, 그러나 파업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습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스타 장관이라기에는 거리가 먼 모습입니다. 물불 가리지 않는 ‘돌격대’에 가깝지 않은가 싶습니다.
경찰국 설치 반대 수십만 서명, 국회가 답할 때
일선 경찰관들이 오는 30일 열려던 ‘14만 전체 경찰회의’가 사실상 취소됐습니다. 공무원의 집단행동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칠지 의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정중동’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일선 경찰들이 행안부 경찰국 설치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회의를 주도하거나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면 반발이 다시 거세질지도 모릅니다.
경찰들은 일단 국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경찰국 설치를 반대하는 입법청원 서명자 수도 며칠 만에 수십만에 이르렀습니다. 국민들도 국회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행정 쿠데타’ ‘시행령 쿠데타’라는 표현이 메타포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야당이 온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한겨레 논썰>이었습니다.
기획·출연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도움 채반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