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대선 180일전’ 규정 변경 가능성 솔솔
강재섭 대표 “내년에 상황봐서 조정할 수도”
뚜렷한 주자없는 여당 “늦게 확정할 수 밖에” 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대선후보 선출 시기를 놓고 정치권이 주판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후보 선출 시기가 대선 판도에 중대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당내 경선 결과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내부에선 후보를 가능하면 늦게 확정하는 게 전략적으로 유리하다는 주장이 많다. 후보를 먼저 결정해 ‘패’를 보여주면 상대의 공세에 노출돼 흠집을 입고, 참신성이 떨어져 본선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각 당이 대선후보 확정을 최대한 뒤로 미루며, 참지 못해 먼저 결정하는 쪽이 지고마는 일종의 ‘치킨게임’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은 당헌·당규에 ‘대선일 180일 전’으로 대선후보 선출시기를 못박아놨다. 내년의 대통령 선거일(12월19일)을 감안하면 ‘데드 라인’이 6월19일이다. 당내 입지가 앞서는 박근혜 전 대표로선 경선 시기를 늦출 이유가 없다. 반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가능하면 시기를 늦춰 시간을 벌어야 한다. 지난달 이 전 시장이 “대선후보 선출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취지로 말하자, 박 전 대표가 “오랜 논의 끝에 만든 규정을 시험도 안 해보고 손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박한 것도 이런 당내 세력판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이날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대선후보 선출 시기는 내년 상황을 봐서 조정할 수도 있다“며 “내년에 가서 경쟁해보다 전략상 ‘우리 후보만 미리 뽑을 필요가 뭐가 있느냐’라고 하면 탄력있게 운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 대표가 대선후보 선출 시기의 조정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친 박근혜’로 분류되는 자신에 대해 공정성 시비를 제기하는 이명박 전 시장 쪽을 다독이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병국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은 “예컨대 지금 ‘3개월 전’으로 규정을 바꾼다면 그것 또한 전략적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진짜 전략적으로 판단한다면 내년에 가서 판단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한나라당 후보 결정 이후’에 대선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지난 5·31 서울시장 선거에서 강금실 후보를 먼저 확정했다가 뒤늦게 뛰어든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에게 역전패를 당한 ‘학습효과’ 때문이다.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는 열린우리당으로선 후보를 미리 확정할 여력도 없다. 민병두 의원은 “체제를 정비하고 사람을 키우려면 시간을 벌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더욱이 내년 대선 때까지 당을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열린우리당으로선 후보 선출 시기나 규칙을 정하는 주체가 모호하다는 어려움도 있다. 다만, 열린우리당 한쪽에선 내년 4월까지는 정계개편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가정 아래, 열린우리당 자체 후보를 4월 전후에 결정한 뒤 그 후보가 여권의 후보 단일화 등 통합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임석규 황준범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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