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돌려막기’
의사통로 꽉 막혀
의사통로 꽉 막혀
코드에 의존 인재 풀 바닥
문제 불거져도 감싸기 급급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거취를 둘러싼 파동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 방식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인사 검증 과정의 허점, 돌려막기식 인력운용, 이에 따른 국정운영의 혼선이 되풀이되면서 여당 안의 불만의 목소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집권 종반기에 접어든 노 대통령이 ‘믿을 만한 사람들과 함께 임기를 마무리한다’는 구상 아래, 핵심 측근들을 전진배치하는 ‘돌파형’ 인사에 집착하고 있어 인사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적잖게 불거질 전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원래부터 ‘삼고초려’라는 말을 싫어했다. “삼고초려는 봉건시대의 잔재다. 동업자로서 참여하면 되는 것이지 왜 내가 가서 무릎을 꿇어야 하나.”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 참모들에게 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은 외부 인물을 영입하는 데 무척 소극적이다. 새 사람을 찾기보다는 한번 썼던 인물을 이곳저곳 돌려가며 기용했다. 김병준 부총리의 경우도 오래 전에 맺어진 인연을 바탕으로 대통령직인수위와 지방분권위원회, 정책기획위원회를 거쳐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로 계속 중용해 왔다.
외부 인물에 대한 노 대통령의 낯가림은 이른바 ‘코드인사’로 이어졌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코드인사, 낙하산인사라고 비판하는데, 그러면 코드가 안 맞는 인사를 하면 잘 된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물론, 대통령이 자신의 철학과 가치가 맞는 인물을 기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노 대통령이 사람을 쓸 때 자신을 거북하지 않게 하고, 대하기 편한, ‘예스맨’들만을 선호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금 대통령 주변엔 대통령의 뜻을 외부에 전파하는 ‘스피치 라이터’들만 남아 있다”며 “싫은 소리를 하거나 ‘아니오’라고 말하는 참모가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인사 방식은 정권의 ‘인재 풀’(인력 충원 대상)을 극히 좁혔다. 청와대의 행정관이 비서관으로, 비서관이 수석비서관으로 승진하고, 수석비서관과 비서실장, 정책실장이 장관이나 부총리로 승진 기용되는 인사가 거듭되면서 국민에게 ‘이 정권엔 사람이 그렇게 없느냐’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코드인사 자체가 아니라 ‘코드의 협소화’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노 대통령의 ‘회전문 인사’는 청와대 내부 의사결정 구조의 폐쇄성에도 원인이 있다. 노 대통령이 국정의 중요 결정을 내부의 소수 측근·참모집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당과 외부의 폭넓은 의사가 반영될 통로가 막힌 것이다. 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인사의 기본 원칙인 적재적소 배치나 능력, 자질과 전문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하려는 청와대의 노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돌려막기 인사’가 온정주의로 이어지면서 내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것도 문제다. 외부 인사를 기용할 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측근 인사들에 대해서는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또 인사 뒤 심각한 흠이 불거져도 청와대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보다 감싸기에 급급한 행태를 보여 왔다.
청와대는 ‘부적절한 골프’로 물의를 빚어 사퇴했던 김남수 전 사회2조정비서관을 이날 전기안전공사 감사로 내정했다. 돌려막기식 인사와 온정주의의 전형적인 합작품이다.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지만 청와대에 이런 파문은 전혀 ‘반성거리’로 다가오지 않고 있다.
임석규 이지은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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