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발언에 담긴 의미
정치권의 최대 현안인 ‘인사파동’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육성’이 4일 확인됐다.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한 이후 이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발언은 외부로 공개되지 않아왔다. 노 대통령이 지난 2일 청와대 핵심 참모들과의 회의 자리에서 한 발언을 보면,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인사권이 흔들리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임기가 1년반이나 남았는데, 인사조차 제대로 못할 경우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남은 게 인사권인데 무력화 안돼” 위기감
청와대 관계자 “문재인 법무장관 강행뜻 아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4일 “인사를 하기도 전에 ‘누군 안돼. 이사람은 쓰지마’라고 하는 것은 인사를 하지 말라는 얘기 아니냐”라며 “대통령이 인사를 못하면 아무 일도 못하는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점을 만천하게 공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병완 비서실장이 지난 3일 ‘대통령의 인사권은 헌법적 권한’이라고 강조한 것이나,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이 4일 “인사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이 인사권에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 대통령은 또 이번 사안의 본질을 차기 대선을 둘러싼 권력투쟁으로 규정하며, 열린우리당 내부 대선주자들의 차별화 시도에 대해서도 강력히 경고했다. 여권의 대선 후보 자리를 노리는 인물과 세력이 인기가 떨어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지지율 상승을 꾀하는 파워게임 과정에서 인사파동이 불거졌다는 게 노 대통령의 인식인 것 같다. “대통령 한 번 하려고 그렇게 대통령을 때려서 잘 된 사람 하나도 못봤다”는 노 대통령의 말은, 야당보다는 여권 내부의 대선주자를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당적 문제에 대해서도 ‘탈당 절대불가’의 배수진을 쳤다. 그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취임 이후 마련된 당 지도부와의 회동에서도 “절대로 탈당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엔 “나가려면 당신들이 나가라”며 한발짝 더 나갔다. 결별까지도 각오하고 있으니 해볼테면 해보라는 인식이다. 노 대통령은 인사권에 대한 여당의 문제제기가 결국 자신에 대한 탈당 요구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미리 쐐기를 박아두려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노 대통령이 판을 깨겠다고 작정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후임 장관 인선과 관련해, 노 대통령은 “내가 마음 속에 있는 인물을 기용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문재인 전 민정수석 기용을 강행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다. 여당이 ‘문재인 반대’를 공개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문재인 장관’을 밀어붙일 경우, 당·청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여권의 공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당 쪽의 양해를 얻는다는 전제 아래 문 전 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 카드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김근태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만나기로 한 것은 공멸의 위기감에 대한 공감대 속에 해법을 모색하려는 시도다. 당 쪽에선 이날 청와대 오찬회동 참석자를 김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로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청와대 쪽은 지도부 전체가 참석하는 자리를 요청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당 쪽에 할말이 많다는 방증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