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포기-안전보장 ‘주고받기 협상’ 유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시하는 미국 고위급 인사의 방북과 북-미 직접대화를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이 현실화할 수 있을까?
김 전 대통령은 최근 잇따른 강연과 외신 인터뷰를 통해 ‘북한과 미국의 주고받기식 협상을 통한 핵문제 해결’을 거듭 강조했다. 1994년 북핵 위기 때도 그는 미국의 대북특사 파견을 통한 해법을 제안하면서 그 특사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지목했다. 이 계획은 그대로 실행돼 북-미 제네바 합의란 물꼬를 텄다.
18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 개막식 축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경제제재가 시작되면 북한은 더 한층 반발할 것이고, 여러가지 위험한 충돌도 예상된다”며 제재를 통한 해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과 주고받는 협상이 이뤄지면 한반도 비핵화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만큼, (북한에) 한번 기회를 줘봐야 한다”며 “기회를 줬는데도 북한이 배신하면 그때는 6자 회담 참가국 등 세계 각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을 제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행사엔 마침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강경한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입안한 폴 월포위츠 세계은행 총재와, 부시 행정부를 맹비난해 온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가 함께 참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근 〈뉴스위크〉 〈시엔엔〉(CNN) 〈로이터〉 〈시비에스〉(CBS) 등 외국 언론과의 연쇄 인터뷰에서도 북-미 대화를 거듭 강조했다.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 ‘미국 책임론’을 정면으로 제기했던 그는 19일엔 서울대에서 강연한다.
무력 제재나 경제 제재보다는 북-미 직접대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논지다. 햇볕정책을 주도한 장본인이자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직접 손을 맞잡았고,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김 전 대통령의 북한 핵 해법은 미국 여론에도 묵직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란 게 국내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 전 대통령이 얘기하는 ‘주고받기식 협상’의 핵심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한 검증을 약속하되,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다. 양쪽이 이를 동시에 실천해야만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가능해진다는 게 김 전 대통령의 주장이다.
김 전 대통령은 평양과 워싱턴 사이 협상 시동을 걸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미국의 고위급 대북특사 파견을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그는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대북특사로 가는 것이 좋다”며 “그런 의미에서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위크〉는 미국에서도 제임스 베이커 전 장관이 대북 특사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베이커 전 장관을 대북 특사감으로 최근 지목했다. 아버지 부시 시절 각료를 지냈고, 미국 보수층의 신뢰가 두텁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김 전 대통령이 대북특사로 나서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지만 김 전 대통령 자신은 그럴 뜻이 없어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를 맡고 있는 최경환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대북특사 파견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본인이 특사로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대북특사 파견과 관련해, “김 전 대통령 스스로 특사자격으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달리 대북특사로 나서기를 꺼리는 까닭을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디제이가 북한으로 가서 할 얘기는 주로 북한에 대한 충고다. 그런데 특사 자격으로 가서는 충고를 할 수가 없다. 디제이는 대북특사를 맡는 것보다는 개인 자격으로 방북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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