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정책 변화는
일부 전문가 “제재만 부각…포용정책 이미 실종”
후임인선 기조유지 메시지 보여줄 인사 가능성
일부 전문가 “제재만 부각…포용정책 이미 실종”
후임인선 기조유지 메시지 보여줄 인사 가능성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사퇴는 어떤 표현을 동원하든 포용정책의 ‘후퇴’를 상징한다. 물론 청와대는 이 장관 교체를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는 전열 정비의 기회로 삼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의표명과 수리는 ‘전의를 상실한 핵심 장수의 교체’로 보인다. 엄혹한 현실 앞에 포용정책을 유지하는 게 의문시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이종석 장관 사퇴 및 외교·안보 라인 전면 개편에 따른 대북정책 기조 변화 여부와 관련해,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기조가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장관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사퇴가 대북정책의 변화를 불러오지는 않을 것임을 수차례 강조했다. 이 장관의 교체가 대북 포용정책의 수정으로 비치는 것을 진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 설명과 달리, 참여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9일 북한 핵실험 직후 정부가 발표한 7개 항의 성명은 대북 강경 메시지와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의’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비판이 일자 정부는 대북정책의 기조 자체가 바뀐 것이 아니며 ‘조정 중’에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외교안보 부처 간의 통합·조정 체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태에서 청와대와 외교통상부를 중심으로 ‘국제 공조’를 강조하는 현실론이 득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의 사의 표명은 이런 현실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전문가는 이를 두고 “대북 정책의 폐허 상태”라고 표현했다. 이 전문가는 “이 장관의 퇴임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대북정책 기조는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대북정책이 실종되면 대미 관계에서 한국의 발언권이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는데, 지금 국면에서는 유엔 안보리 제재만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김정일 위원장-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6·17 면담을 지렛대로 미국을 설득했던 사례를 단적으로 꼽았다. 이제 누가 그것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중국 러시아 등과 함께 북-미의 정면충돌을 막고 북-미를 협상테이블로 이끌어 낼 전략을 제시해야 할 시기다. 이 시기를 놓쳐 미국의 일방적 제재와 이에 맞선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 이어진다면 대북 포용정책은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진용이 어떻게 짜이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로 보인다.
물론 차기 통일부 장관은 “대북 포용정책은 변화가 없다”는 메시지를 국내 외에 보여주기 위한 인선이 될 것이다. 현재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문희상·배기선·임종석 열린우리당 의원이나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등은 이런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수장이 떠나버린 통일부의 위상 저하와 현재와 같은 외교안보 정책의 통합·조정체계에서, 다음 통일부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장관은 자신의 사임이 대통령과 후임 장관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체가 통일부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 돼버렸다.
강태호 이용인 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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